| 제 194 호 |
| 자주적 근대의 상징물, 번사창 |
| 김문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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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9월 26일, 조선 정부는 북경으로 영선사(領選使)를 파견했다. 청나라로부터 근대식 신무기를 구입하고 신무기 제조법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에서는 서양의 신무기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반발심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청나라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청에서 실무를 협의한 주체는 이유원과 이홍장(李鴻章)이었고, 이용숙과 변원규가 양국을 오가며 연락을 담당했다. 청나라에서 조선 정부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일본과 러시아의 조선 침략을 억제하면서 조선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서양의 신무기에 대한 관심 고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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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사에는 대표자인 김윤식을 비롯하여 관리가 13명, 신무기 제조법을 배우게 될 유학생으로 학도 20명, 공장(工匠) 18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육로를 통해 11월 17일에 북경에 도착했고, 유학생들은 11월 30일에 천진에 도착하여 천진기기국(天津機器局)의 동국(東局)과 남국(南局)에 배치되었다. 천진기기국은 청나라의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에 의해 1867년 천진에 건설된 군수공장으로 서양식 총포와 탄약, 선박 등을 만들고 있었다. 조선의 유학생들은 1882년 1월 8일부터 수업을 시작했고, 화약과 탄약의 제조법, 전기, 화학, 제도, 제련, 기초기계학, 외국어 등을 익혔다.
1882년 10월 16일, 조선의 유학생들은 천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6월 9일에 발생한 임오군란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학생들의 학습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고, 조선 정부의 재정적 궁핍 때문에 중도에 귀국하는 자가 속출했다. 신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알게 되면서, 청에서 제조 기계를 구입한 후 조선에서 기기국(機器局)을 건설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결국 유학생들은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이듬해 3월, 조선 정부는 삼청동 북창(北倉)에 기기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영선사 김윤식을 수행했던 김명균이 천진에서 기술자 원영찬(袁榮燦) 등 4명을 데려와 기기국을 건설했고, 공사의 감독을 위해 김윤식, 박정양, 윤태준, 이조연이 기기국 총판, 구덕희, 백낙윤, 안정옥, 김명균 등이 기기국 방판으로 임명되었다. 1883년 8월에 김명균은 상해의 험취소(驗取所)에 가서 기계를 구입해 왔고, 그때까지 기기국 건물들이 완공되지 않자 공사를 독려했다. 기기국의 건물은 1884년에 완성되었으며, 번사창(飜沙廠) 목양창(木樣廠), 숙철창(熟鐵廠) 동모창(銅冒廠), 고방(庫房) 등이 있었다. 이중에서 번사창은 모래로 만든 주형에 쇳물을 부어 철물을 제조하는 곳으로 군기시의 화약고가 있던 별창 자리에 건설되었다. |
| 자주 국방을 위한 신식무기 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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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사창은 근대식 무기를 제조하는 군수공장으로 출발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10년 남짓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이 번사창을 비롯한 무기 제조창을 모두 폐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번사창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세균 실험실로 사용되었고, 해방 직후 중앙방역연구소로 이용되었으며, 1970년에 한국은행에 불하되어 금융연수원에 소속되었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번사창의 존재가 분명하게 알려진 것은 1984년이었다. 중국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벽돌 건물을 보수하던 중에 그 상량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상량문은 가로 450cm 세로 75cm의 붉은 비단에 씌어졌고, 1884년 5월 16일에 이강식이 글을 짓고 이응익이 글씨를 썼다. 두 사람은 모두 기기국 소속의 관리였다. 상량문의 내용을 보면, 고종이 근대식 시설인 전환국, 혜상국, 친군영, 해방영을 설치한 이유를 설명하고, 군사 시설을 갖추어 간악한 도둑을 처벌하기 위해 기기국과 번사창을 창설했다고 했다. 또한 삼각산에 자리한 번사창은 사람들의 마음을 성벽처럼 굳게 하고, 사방에 근심이 없게 하며, 수많은 백성들을 보전하고, 삼천리 우리나라를 만세토록 보살펴 줄 것을 기원했다.
번사창은 서양 세력의 압박이 강해지던 시기에 고종이 자주 국방을 실현하기 위해 건설한 군수공장으로 자주적 근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유물이다. 번사창 건물은 현재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안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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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문식 |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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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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