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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사랑 이야기

문근영 2011. 8. 28. 08:28

보석같이 아름다운 사랑이 숨 쉬는 절, 길상사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사랑 이야기

 

09.08.17 17:27 ㅣ최종 업데이트 09.08.17 17:27 김수종 (kimdaisuke)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에 가면 평안도 출신의 재북시인 백석(白石)과 그의 연인이었던 대원각 주인 김영한 여사가 생각난다. 마치 성북동 산 어딘가에 아직도 백석과 김영한이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우리 가족도 그들을 생각하면서 여름 산책을 하기 위해 길상사로 갔다.

 

백석은 평안도 방언을 즐겨 쓴 모더니즘 계열 시인으로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산>등을 발표했다.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중학과 일본의 아오야마학원대학을 졸업했다.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한동안 근무하였으며,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8·15광복 이후에는 고향에 머물렀다. 북에서 대학교수 등으로 문단 활동을 하다가 1995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길상사는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1970~80년대 최고의 요정으로 알려진 대원각의 주인이었으며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여사가 7000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건물을 갖춘 대원각 터를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을 통하여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시주하면서, 그의 법명인 길상화(吉祥華)를 딴 사찰로 바뀌게 된다.

              

   
▲ 절 길상사에서
ⓒ 김수종
길상사에서

백석이 남긴 빛나는 사랑의 시 가운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김영한과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시는 백석과 김영한의 애틋하고 깊고 넓은 사랑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기생 생활을 하면서도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하며 인텔리 기생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영한은 우연히 함흥 영생여고보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이 못마땅하여 그를 김영한에게서 떼어놓으려고 강제로 결혼시켰으나 백석은 결혼이 끝나자마자 도망쳐 다시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강제 결혼을 하고 다시 도망치기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

 

부모에 대한 효심과 여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백석은 괴로워하고 갈등하다가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김영한에게 만주로 사랑의 도피를 하자고 제의했지만 그는 백석의 장래를 걱정하여 거절하였다.

                   

   
▲ 절 길상사에서
ⓒ 김수종
길상사에서

1939년 백석은 혼자 만주 신경으로 떠났고, 두 사람 사이는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1942년 백석은 만주 안동에서 잠시 세관업무를 하기도 했는데, 해방되자 북한에 눌러 앉았고 김영한은 대원각의 여주인이 되었다.

 

백석이 남한에서는 재북시인이라는 이유로 시집의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1987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석시선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소개된 이후 재평가를 받았다.

       

   
▲ 절 길상사에서
ⓒ 김수종
길상사에서

한편, 김영한은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1989년 백석에 대한 회고 기록인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1990년 <하규일 선생 약전>, 1995년 <내 사랑 백석>을 펴냈다. 1997년에는 사재 2억원을 털어 백석문학상을 창작과 비평사 주관으로 제정하기도 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도착한 길상사는 폭염의 날씨임에도 산속에 있는 관계로 시원했다. 바람이 살살 불어주고 나무와 꽃들이 많아 산책을 하기에도 좋았다.

 

극락전을 바라보며 잠시 불상을 향하여 절을 한 다음, 우리 가족도 경내를 둘러보았다. 입구 우측에 새롭게 화장실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기존 화장실이 있던 우측 상단은 아주 넓게 트여져 있다.

         

   
▲ 절 길상사에서
ⓒ 김수종
길상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우측 건물은 외벽과 지붕 일부를 고쳤는지 더 깨끗하게 정비된 느낌이다. 바로 앞에 있는 종루는 단청을 새로 하는 사람들 손길이 분주하다.

 

3명의 인부들이 무척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면서 색칠을 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다. 다시 극락전 앞으로 나와 불상을 살펴본 다음, 좌측으로 길을 돌아 스님들이 수도하는 선방이 여러 개 있는 계곡을 따라 오른다.

 

작은 방들이 수십 개 있지만, 모두 정말 수도를 하기에 알맞은 정도로 작은 방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덥고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산속에 있는 관계로 크게 고생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 절 길상사에서
ⓒ 김수종
길상사에서

맨 위에 있는 선방은 주지스님이 계시는지 건물도 좋아 보이고, 크고 깨끗했다. 전체적으로 새롭게 황토로 흙과 담을 만들고 있는지, 곳곳에 황토 칠이 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는 황토로 전부 바꾸는 게 아니라 황토를 덧칠하는 것 같아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 절 길상사에서
ⓒ 김수종
길상사에서

선방들도 통나무로 새롭게 수리되거나 교체된 것이 여러 개 보였다. 낡은 선방을 예쁘게 바꾼 것이 좋아 보였다. 맨 위의 선방을 본 다음 우측으로 돌아 극락전 뒤편으로 내려왔다.

 

'서울 도심에 어쩌면 이런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상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원래 요정이라는 것이 깊은 산속에 비밀스럽게 있던 곳이라 그런지 절로 바뀌어 천만다행이다 싶다.

              

   
▲ 절 길상사에서, 연우는 지루한지 땅 바닥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다.
ⓒ 김수종
길상사에서

절 입구로 내려와 물을 한잔 마신 후,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인근의 식당으로 갔다. 더운 날씨였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날이었다. 여름이지만 저녁바람은 선선한 것이 좋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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