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가 최립, 일본과 외교가 필요하다
김 문 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최립(崔岦, 1539~1612)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뛰어난 문장력을 바탕으로 외교 활동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는 1577년부터 1594년까지 네 차례나 명나라의 수도를 다녀왔는데, 두 번은 태조 이성계의 계통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은 왜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구원병을 요청하고 광해군의 왕세자 책봉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최립은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에서 명나라로 보내는 외교문서의 작성을 전담하다시피 하였는데, 그의 문장은 날카로운 의지와 담백한 생각으로 격조가 높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호관계에서 적극적 외교로 실리와 명분을
1607년에 최립은 일본을 방문하는 경섬(慶暹)을 전송하는 글을 지었다. 당시 경섬은 일본에서 보내온 국서에 회답하고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한 사신단의 부사(副使)라는 직함을 가졌다. 최립은 이 글에서 조선인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기를 꺼려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바다를 건널 때 폭풍이 불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최립은 군자의 신념을 강조했다. 군자라면 정상적 상황이든 비정상적 상황이든 자신이 지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신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일 만리 길이라도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되고, 고래등 같은 파도가 일어도 평지의 연속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일본인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겨우 10년이 지나, 조선의 국토를 유린하고 국왕의 능을 파헤친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이 여전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최립은 일본과의 외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립은 일본의 섭정(攝政)인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한 것으로 보았다. 도쿠가와는 조선인 포로를 수백 명씩 온전히 돌려보냈고, 성종과 중종의 능을 파헤친 범인을 붙잡아 조선에서 처단하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조치는 조선에서 국교를 재개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최립은 국가의 현실적인 이익도 고려했다. 그는 도쿠가와가 험한 파도를 넘어 국교를 요청하는 국서를 보냈으니, 조선에서 화답하는 ‘회답사(回答使)’를 보내면 국가의 명분도 서고 체통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 측에서도 조선의 사신을 맞이하며 예의를 갖추고 성의를 보일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쪽에서 먼저 말하지 않아도 조선인 포로를 추가로 데려오는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과연 최립의 예상은 적중했고, 전쟁으로 파탄이 났던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도 점차 정상화되었다.
상대국의 지도자 인품과 청렴강직 인물을 파악
최립은 수년간 명과의 외교 업무를 담당하면서, 명나라는 배울 것이 많은 나라로 보았다. 그는 1601년에 명을 방문하는 유근(柳根)을 전송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오라고 당부했다. 그는 조선과 차이가 나는 명나라의 제도를 철저히 연구했다가 조선 정부가 개혁안을 마련할 때 건의하라고 했다. 그는 명에서 재물을 탐내지 않는 문인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인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록했다가 알려달라고도 했다. 임진왜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긴밀히 접촉할 상대를 미리 파악해 두기 위해서였다. 또한 조선이 전란을 겪으면서 서적이 대부분 불타버렸으므로, 명나라에서 볼만한 서적들을 골라 수입해 오라고 요구했다.
최립은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하지만 일본에서 무엇을 배워오자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경섬이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돌아오라고 말했을 뿐이다. 최립은 도쿠가와가 다스리는 일본이 믿을만하다고 했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근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을 돕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가, 교과서 파동으로 다시 주춤해지는 분위기다. 조선의 외교가였던 최립이 다시 살아온다면 지금의 일본을 보고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김문식
·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