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호미곶 일출

문근영 2011. 8. 17. 08:31

     호미곶 일출


동해, 거기에 가면 남색의 깊고 넓은 바다가 열린다. 칙칙한 회색빛 서해와는 전혀 다른 신선함과 박진감이 넘치는 바다다. 무한한 공간감의 바다를 바라보면 막힌 가슴도 무한으로 열린다. 사람들은 수평의 무한 공간에서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작은 소망을 빈다.

 

무한 공간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어느 곳 보다 더 밝음과 더 소망과 더 큰 희망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해에게 소망을 담아 보낸다. 사람들이 새해 아침 해맞이에 빠져드는 것은 아마도 뜨는 해를 바라보며 그 순간만큼 우주와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어서 일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해의 중심에 놓이게 되고 그 해에 자기의 중심을 세워 염원을 담아 보낸다. 그래서 이곳 호미곶 아침 해는 다른 어느 곳 보다 던 간절한 소망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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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새해 아침은 이렇게 밝아 왔다. 해는 구름 속에 갇히고~~~ (동해 구룡포에서)

 

나는 수년 동안 새해 아침이면 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아 왔다. 지리산에서, 소백산에서, 왕실봉에서, 무등산에서, 남해 금산에서 그리고 집 뒤 봉화산 까지 산에 올라 아침 해를 맞이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 수직의 고양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켜켜이 쌓인 산등을 타고 오르는 해는 자연의 신비함과 장엄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다 올해는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보고 싶어 호미곶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이 땅에 비춰주는 서광을 가장 먼저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바라던 새해는 기대를 져 버린 채 구름에 가려 얼굴조차 내 보여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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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에서 해을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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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의 일출(2004년)

 

우리는 왜 이렇게 새해맞이에 열광하는가. 해는 하늘이며 하늘은 광대무변의 유일이며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런 해를 숭앙하는 것은 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 민족도 일년 농사의 풍성을 기원하기 위해 새해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런 태양 숭배의 민족적 유전 형질이 수천 년간 우리의 정신세계에 자리하면서 세계유일의 새해맞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 않는가 싶다. 새해 아침 자기의 소망과 나라의 융성까지도 함께 빌어보기 위함에서 말이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해가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설과 추석 다음으로 벌어지는 국민 대이동이 된 셈이다. 이는 지자체마다 다투어 해맞이 축제를 벌인 결과 엄청난 폭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가 뜨고 지는 곳이면 방을 구하지 못해 차 안에서나 새우잠을 자거나 노숙을 하면서 까지 해를 보려 몰려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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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항상 축제의 중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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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무대에서는 밤내 노래가 이어졌다.

 

호미곶 인근에 방 잡기를 아예 포기를 하고 구룡포로 향했다. 구룡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구하고자 하던 방이 없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겨우 언덕위의 인심 좋은 민박집에서 방하나 얻어 짐을 풀었다. 창문을 열고 보니 바로 창문 아래에서 파도가 철석 거렸다. 검은 바위 너머로 잿빛 바다가 무망하게 열려 있었다. 이 작은 방의 창문이야 말로 무한으로 달려가려는 전진의 메타포였다. 힘들어 찾아다닌 보람이 이 곳에 있었던 것이다.

 

짐을 풀고 일출 포인트를 찾아 나섰다. 어둠이 내리는 바닷가 여기저기 돌아보며 알맞은 곳에 눈도장을 찍고 호미곶으로 내달렸다. 어둠 속으로 차들의 헤드라이트는 줄줄이 실금을 그어가고 있었다. 밀리고 더듬거리며 겨우 도착한 호미곶은 온통 차요 사람이었다. 논밭에 임시로 만든 주차장에는 자원 봉사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했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모여 드는 사람들을 보며 그중 우리도 한몫 끼었다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곳 호미곶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물론 겨울에는 간절곶이지만 상징성에서는 이곳 호미곶을 제일로 친다. 새천년 한민족 해맞이 축제장이 열렸던 곳으로 올해는 경북 찾기 캠페인 첫해의 축제가 함께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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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가설한 몽고텐트 안에는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난방 시설이 되어 있어 작은 이불 하나면 충분하게 밤을 새울 수 있다. 행사 주최측의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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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마리로 만들었다는 과메기 조형물
행사가 끝나면 모두에게 나누어 준단다.

 

이 곳 광장에 몰려든 사람들은 전야제를 즐기며 밤을 지새우고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노숙자를 위해 설치한 몽고텐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댔다. 광장은 온통 웃음꽃이 피고 환희와 낭만과 추억으로 물들어 갔다. 과메기 조형물과 조명터널인 루미나리에가 설치되고, 해상 불꽃쇼가 열리며, 만 명이 먹을 떡국을 끓이는 등 다채로운 행사로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 달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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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장은 음식 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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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은 지금 과메기가 제 세상이다.

 

오나가나 축제장은 음식 난장이다. 팔도 음식이라지만 거개가 다 느끼한 기름 튀김이요, 파전이요 고기구이여서 그 음식이 그 음식인 것이다. 축제란 어차피 먹자판이니 먹거리를 빼 놓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 건가. 그래도 가스등은 아니지만 백열등 아래 김이 모락거리는 번데기와 고구마와 튀김과 옥수수가 있어 정겨웠다.

 

가설무대에서는 무명 가수가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빡빡이 모여든 방청객들의 환호소리가 요란했다. 어두운 하늘에는 하얀 연들이 꼬리를 흔들며 요동치고 작은 폭죽들은 밤하늘을 향해 붉은 빛 금을 그어댔다. 방파제에 몰려든 사람들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손의 조형물을 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폭죽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이 곳에는 바다와 육지에 마주 보도록 설치한 거대한 손의 조형물이 있다.

 

마치 가장 먼저 뜨는 아침 햇살을 움켜잡으려는 듯 ‘상생’을 주제로 한 조각품이다. 누가 저런 발상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 손이야 말로 이제 호미곶의 명물이 된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잘 구상된 조각품 하나가 이렇게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을 보면 비록 상업화 되었지만 창조적 조형품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절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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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어둠 속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파도는 하얀 포말이 되어 끊임없이 밀려와 자기를 부수어 댔다. 저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여기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어둡고 힘들게 살다 겨우 희망이 보인다 싶을 때 허무하게 스러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둠을 가르는 저 파도도 지금 그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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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들은 밤하늘로 날아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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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먼 바다로 폭죽을 날려 보내고 있다.

 

이튿날 어둠이 밀려가는 새벽 바다는 하늘을 열지 못하고 침묵에 빠져 있었다. 검푸른 바다와 붉은 하늘로 양분된 거대한 일출의 파노라마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제 보아 두었던 바닷가로 나갔지만 하늘은 끝내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들어 주지 않았다. 해는 겨우 옅은 구름에 붉은 빛만 슬쩍 물들인 채 거기 그대로 잠겨 나올 줄을 몰랐다. 남빛 바다에서 불끈 솟아오르기를, 그리고 장엄한 오메가 형상을 만들어 주기를, 그런 바람을 안고 황금 알 같은 새해 밝은 태양을 보기 위해 달려 왔건만 하늘은 끝내 우리의 소망을 져 버렸다.

삶이 고달파서 절망에 빠졌던 많은 사람에게 주어야 할 희망의 빛을 접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안고 못내 아쉬운 듯 검은 바위 위에 앉아 희부연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싣고 한 척의 고기잡이배가 먼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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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바다 냄새의 작은 구룡포에도 하루가 열리고 있었다. 동해바다는 깊고 푸른 남색 빛깔로 넘치는 그 특유의 생명력을 잃은 채 아직도 회색에 졌어 있었고~~~

 

                                      2007. 1. 1     F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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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가 너무 정겹고 멋져 보였다.
어린 시절 고소하던 번데기가 왜 그렇게 생각이 났을까?
우리는 고동을 사서 내내 빨아 먹고 다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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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홍 택 (011-608-9505)
 산, 숲, 야생화, 아름다운 자연 속에 꿈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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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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