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서해기행

문근영 2011. 8. 7. 17:23
 서해 기행


동해가 힘이고 생명력이며 직유라면 서해는 유연성이고 사유이고 은유이다. 동해의 깊고 거친 남색 바다와는 다르게 서해는 완만하고 실팍지고 질펀한 회색바다이다. 부드럽고 완만한 개펄은 비록 제 모습을 내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서 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기르고 있다.

 

그래서 서해는 어디서나 모성으로 다가온다. 서해를 바라보면 언제나 숨어 살 듯 감추고 살아오신 어머니의 품이 생각난다. 그래서 언제 찾아도 서해는 친숙하고 다정하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하다. 동해에서 엄하게 종아리 맞은 아이도 이곳 서해에서는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려도 되지 않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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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동해의 여름바다 보다 겨울의 서해가 더 그리운 것이다. 흰눈이 내리는 날, 이름 모를 어느 바닷가에 서보라. 회한과 외로움에 가슴이 저릴 것이다. 또는 하얀 백사장에서 붉게 지는 해를 바라보라. 거기에는 꺼지듯 져가는 해넘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란 마지막 숨을 다할 때가 가장 아름답듯, 충만하던 에너지를 쏟아 버린 해넘이 또한 그런 모습이다. 해넘이란 내일을 잉태하기 위한 처절한 의식일지니 그런 행위가 얼마나 비장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그게 서해 해넘이요, 서해의 진면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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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매바위와 삼형제 바위 

 

서해 고속도로를 벗어나 홍성 나들목에서 40번 국도를 타고 안면도를 향한다. 천수만 방조제에서 간월호에 떠 있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평화롭다. 간월암이 하얀 물빛에 허리를 담그고 그림처럼 떠있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 때만 섬이 되는 곳, 백팔번뇌 모두 잊고 세상을 비껴 앉아 저 홀로 외로움을 달래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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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는 그림처럼 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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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니의 이국적인 풍경

간월암을 뒤로하고 안면도로 향한다. 안면도(安眠島), 말 그대로 편하게 쉴 수 있는 섬이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이름인가. 낮은 구릉과 하얀 백사장과 푸른 숲은 충분히 쉴만한 터전이 되고도 남음이다. 안면도 다리를 건너기 전 드르니에 들렸다. 드르니, 지나치지 말고 들려 달라는 뜻인가? 호수 같은 바다 건너 펼쳐진 드르니를 보는 순간 유럽풍의 건물과 풍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다. 안면도를 가려거던 드리니에 꼭 들려 보기 바란다.

안면대교를 건넌다. 섬 아닌 섬, 우리에게도 운하 시절이 있었다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운 곳이 안면도이다. 조선 인조 때 삼남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배들의 수고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이곳을 절단하여 섬 아닌 섬을 만들었고 후손들은 다시 다리를 놓았으니 안면도의 지나온 이야기가 조금은 궁상스럽다.


꽂지 해수욕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한숨을 돌린다. 꽃이 피어있지 않는 곳에 꽃 박람회장을 열었던 곳이다. 겨울 꽃지는 황량스럽기 그지없다. 절단하고 매몰하고 쳐 발라서 살벌하게 변해 버려 찾아온 사람들의 가슴에 찬 바람을 일게 하고 있으니 이 모두가 무지한 인간들이 빚어낸 소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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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의  할매, 할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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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의 해넘이 (한국 관광공사 사진)

 

물이 든 바다에는 할매, 할아배 바위가 저만큼 떠 서로 손짓을 하고 있다. 가까이 있어도 떨어지면 그리움이나 보다. 예전의 갈대숲은 다 어디로 갔는지, 갈대밭을 지나 할매바위로 건너갔던 시절이 그립다. 인간의 편의성에 의해 저질러진 횡포가 이 지경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찬바람 맞으며 석화를 파는 할머니 곁에 둘러 앉아 소주잔으로 실망과 아쉬움을 달랜다. 할머니 얼굴에 패인 골과 갈퀴 같은 손에 고달픈 세월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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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눈 내리던 날의 영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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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영목항

 

국도 77번은 안면도를 관통하며 끄트머리 영목항에서 길을 멈춘다. 몇 년 전 겨울 저녁, 삼총사들은 하얀 눈이 내리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무척 한적하고 소박하던 작은 포구가 이제는 요란하고 천박스럽게 분칠을 하고 있다. 예전의 그 아늑하던 영목항이 아니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우나 현실은 삭막한 것이다.

 

그래도 풍성한 조개구이를 안주 삼아 피로를 푼다. 하얗게 반들거리는 조개들이 제 나이를 껍질에 새기고 잉걸불 석쇠 위에 누워 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의 고운 얼굴에서 바닷바람이 새겨 논 세월의 흔적들을 본다. 영목항은 더 이상 포근함도 그리움도 아닌 퀭하니 뚫린 빈 가슴으로 남아 다시 가고 싶지 않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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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항 조개구이집 할머니

 

그래도 안면도 구릉을 타고 달리는 기분은 예나 다름없다. 스치는 숲 사이로 기웃거리는 먼 바다와 키다리 병정 같은 소나무들과 곳곳으로 갈라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는 길은 여전히 낭만적이다. 그런데 참으로 애석한 것은 안면도는 이제 조용하고 소박하던 외로운 섬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파라다이스도 아니라는 것이다. 골마다. 해안 마다, 산등마다 번들거리며 서 있는 호텔과 펜션들이다. 국적 불명의 건물들이 온통 안면도 곳곳에 사마귀처럼 자리하고 있어 더 이상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땅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안면송 만은 여전하다. 하늘을 치솟을 듯한 붉은 몸짓과 푸른 솔잎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아직 딱 하나 남아 있는 태고의 자연이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세상사 벗어 버리고 솔향기 맡으며 삼림욕을 즐기려 많이들 찾는다. 그 소나무 숲을 걷는다. 모처럼 얻은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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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해수욕장 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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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최후의 자연 - 안면송
(2003 여름 촬영)

돌아오는 길, 삼봉 해수욕장에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붉은 해가 낮은 구름 사이로 스며든다. 물 빠진 서해 바다는 황금색을 드리운다. 바다는 먼 곳에서부터 붉어지며 하늘과 바다를 가름하지 않는다. 모두들 아이가 되어 모래사장을 내달린다. 비록 붉은색으로 치장은 하지는 않았어도 오렌지 빛 고운 저녁 바다를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이튿날 아침, 밤늦도록 낯선 땅의 정취에 빠져 들었던 일행들이 수학여행 떠나는 아이들 마냥 시간도 전에 모여든다. 겨울 맛이 살짝 간 아침이다. 제부도에 전화를 걸어 물때를 확인한 뒤 급히 차를 몰아 서해고속도로에 올라선다. 서해 대교가 낮은 안개 속에서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평택항에는 선적을 위한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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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에서 바라본 서해 대교

우리는 여유롭고 저들은 바쁘다. 저들은 생산하고 우리는 향유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이다. 그게 삶이다.

비봉 나들목을 벗어나 지방도 306번을 탄다. 예전의 좁고 굽이진 도로가 아니다. 지방도가 어느새 4차로로 넓혀져 차들로 붐빈다. 제부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물 빠진 바다에는 낮은 시멘트 도로가 뱀 허물처럼 구불거리며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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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가는 길 - 물이 빠져야 길이 열린다.

길 양편 질펀한 개펄을 보며 제부도로 건너간다. 2.3km의 물길이 하루에 두 번 씩 갈라져 모세의 기적이라고들 하지만 바다 갈라짐은 자연 현상의 일부일 뿐, 무슨 기적이랄 것 까지 있겠는가? 그러나 썰물에 물길이 드러나 밀물로 다시 덮일 때 까지 6시간 동안 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래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높아가고 그 길을 우리는 지금 환호성을 지르며 건너간다.

 

제부도에는 작은 섬답지 않게 볼거리가 많다. 제부도 일품인 '매바위'가 있고, 조개껍질이 섞인 넓은 해수욕장이 있다. 평일에도 해산물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아 찾는 이들의 군침을 돋운다. 여기도 안면도처럼 잠자는 집들뿐이다. 제부도는 지금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제 몸을 흐트리며 누워 있다.

 

제부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운탕으로 아침 겸 점심으로 때우고  매바위로 향한다. 제부도가 저 매바위와 삼형제 바위 때문에 대접을 받고 있으리라. 그래서 섬도 앉을 자리에 앉아야 하나 보다. 아무리 빼어나도 전라도 어디 구석에 박혀 있다면 이런 대접이나 받을까? 전라도 근해에 풍광이 아름다운 섬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섬 또한 매 한가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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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 제부도는 이 바위로 이름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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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매운탕

 

물 빠진 자갈밭을 걸어 매바위를 한바퀴 돌아 나온다. 평일인데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회색빛 개펄이 정오의 햇빛에 번들거린다. 서해는 지금 생명을 품고 잠들어 있다. 찾는 사람들이 바쁠 뿐 바다는 언제나 한가롭고 태평스럽다.

 

여행은 목적지에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찾아가는 과정이요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이다. 그 모든 것들을 얼마만큼 향유하고 얻고 소화해 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가 여행의 제 목적이다. 서해,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얻고, 담고 왔는가? 어둠을 내달리면서도 서해바다는 그리움이 되어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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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2  F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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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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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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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개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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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항 앞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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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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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항 조개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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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홍 택 (011-608-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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