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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불행했던 삶도 지내놓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18년의 외롭고 쓸쓸했던 다산의 유배생활도 세월이 흐른 뒤에는 너무나 많은 추억이 있고 가치 높은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세월이었습니다.
다산은 유배기간 동안 강진읍내를 중심으로 8년의 세월을 보냈고, 다산초당에서 10년을 보냈습니다. 후반에 10년을 보냈던 다산초당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보면 유배살이라기보다는 은자로서의 여유와 넉넉함이 가득했던 삶이자 우뚝 솟은 학문적 대업을 성취한 생의 절정기이었습니다.
2500여 수가 넘는 방대한 다산의 시집을 읽어보면 그 다산초당 시절의 시가 의미도 깊지만 아름답고 멋진 대목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다산은 그윽한 곳 귤동마을 서쪽인데 천 그루 소나무 사이로 한 줄기 시내로세. 시냇물 처음 흐르는 그곳에 이르고 보면 바위 사이 소쇄하여 숨어살 곳 있다오. 茶山窈窕橘園西 千樹松中一道溪 正到溪流初發處 石間瀟
有幽棲 <茶山花史>
이렇게 시작되는 「다산화사(茶山花史)」20수를 비롯하여 「다산팔경사(茶山八景詞)」8수, 「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4수 등 다산초당을 주제로 하여 읊은 시들은 곱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들입니다. 불우한 삶을 서럽고 아프게 여기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와 계절의 찬란함을 멋진 시심으로 읊을 수 있었다면, 그 마음의 폭이 얼마나 컸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아름다운 환경에 자신을 몰입시키며 학문의 세계로 침잠할 수 있었던 그런 정신이 다산학을 이룩한 기초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남이 못되기나 바라고 아옹다옹 싸움질이나 하면서 상대편의 멸망이나 바라는 현대인들만 상대하다가, 다산과 같은 도량 큰 은자를 바라보면 우리는 너무 부끄럽고 안쓰럽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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