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왕릉 혼유석
영혼이 앉아 유할수있는 석좌가 마련되어있는 미추왕릉의 혼유석은 유일무이한 모습으로 사료된다.
혼유석의 고복형 받침석
신라 미추왕릉비
참봉행공례
前 참봉들▲ 現 참봉들 ▼
혼유석. 헌관은 배위석에서, 2기의 준상석(樽床石)과 관수세뢰(灌水洗磊)1기
참봉 도임 행공례후 기념촬영
대릉원내의 미추왕릉은 별도로 담장이 둘러져 있다
미추왕릉 [味鄒王 ?~284] 사적 제175호 경북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내
시내에 위치한 대릉원은 경주에 있는 고분 중 가장 큰 규모로 13대왕 미추왕릉을 비롯한 23기의 고분이 모여 있는 곳이다.
신라의 제13대 미추왕(재위 262∼284)은 김알지의 6대손으로 조분왕의 사위로 왕위에 올랐다.
경주 황남동 무덤들 중 가장 잘 정비된 대릉원 내에 높이 12.4m, 지름 56.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魂遊石) 이 있고, 담장을 돌려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무덤 앞 대를원 담장밖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794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나라를 지킨 미추왕(未鄒王)과 죽엽군(竹葉軍)
신라 제13대 임금인 미추왕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유례왕 때의 일이었다.
그때 이웃에 ‘이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가 있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부근에 있었던 이서국의 군사들은 신라의 도성인 금성(경주)을 치려고 몰려왔다.
이서국의 기세가 강성하여 신라에서는 많은 군대를 동원해 막아보았지만 그들과 겨루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황송하오나 그만 항복하고 성을 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될 말씀이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적과 싸워야 하오.”
신라의 장군들이 그렇게 옥신각신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이한 군사들이 몰려와서 신라 군사들을 돕기 시작했다.
“대체 당신들은 어느 나라 군사들이오? 왜 우리를 돕습니까?”
신라 군사가 물었으나,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계속 신라의 편에서 이서국과 싸웠다.
그 기이한 군사들은 모두 한 결 같이 귀에 대나무 잎을 하나씩 꽂고 있었다.
그래서 신라 군사들은 그들을 대나무 잎 군사라고 불렀다.
신라는 대나무 잎 군사들의 도움으로 이서국 군사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 대나무 잎 군사들은 처음 나타날 때처럼 연기와 같이 사라져버렸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신라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대나무 잎 군사들을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경주 흥륜사 동쪽에 있는 미추왕의 능에 이르러보니,
능 앞에 대나무 잎 군사들이 귀에 꽂고 있던 대나무 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제야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도다.”
대나무 잎 군사들을 찾으러 갔던 신라 군사들은 다 같이 미추왕의 능에 꿇어 엎드려 큰 절로 감사를 드렸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 미추왕릉은 죽현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대나무가 나타난 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여 신라는 오랜 세월을 평화롭게 지낼 수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제37대 임금인 혜공왕 14년이 되었다.
서기 779년 4월,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김유신의 무덤으로부터 일어났다.
그 속에 어떤 사람 하나가 준마를 탔는데 장군의 차림과 같았다.
또한 갑옷차림에 병장기를 가진 자 40여 명이 뒤를 따라오더니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왕릉 속에서 흡사 진동하는 울음 같은 소기가 나는데 혹은 하소연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사람들이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그것은 바로 김유신의 호소였다.
“저는 평생을 왕을 도와 환란을 구제하고 나라에 공로를 세웠습니다.
지금은 혼백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재앙을 물리치며 환란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에 잠시도 변함이 없사옵니다.”
“어찌 모르겠소. 잘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요즈음 저의 자손들이 죄 없이 죽음을 당하였고 지금의 임금이나 신하들은 저의 공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멀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 다시는 애써 고생하지 않을 것이니 원하건대 왕께서는 허락하소서.”
김유신의 하소연을 듣고 난 후, 이에 응답하는 미추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장군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 많은 백성들은 어떻게 할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이전과 다름없이 힘을 써 주시오.”
“아니옵니다. 제발 부탁이오니 제가 떠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할 수 없소. 나와 함께 나라를 위해 계속 힘을 써주시오.”
“제발 허락해주십시오.”
“그대는 그만 노여움을 푸시구려. 행여 잘못된 생각으로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오.”
잠시 후, 아까와 같은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김유신과 그 뒤를 따르는 군사들이 다시 능속으로 사라졌다.
이러한 소문은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졌다.
혜공왕은 이 말을 듣고 겁이 나서 즉시로 대신인 김경신을 보내어 김유신의 무덤에 가서 사과하도록 했다.
혜공왕은 매년 올릴 김유신의 제사를 위해 취선사에 기름진 논 서른 마지기를 주어 그의 명복을 빌었다.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더라면 크게 노한 김유신의 노여움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덕을 사모하여 미추왕의 제사를 더욱더 성대하고 정성스럽게 지냈다.
출처:『삼국유사』권 제1「기이 제1 / 미추왕(未鄒王)과 죽엽군(竹葉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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