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늙어서 미안하다 / 최일남 (소설가)

문근영 2011. 2. 19. 10:56
180

 

늙어서 미안하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지하철 창구 앞에서 갑자기 멋적은 느낌이 드는 수가 있다. 공짜 승차권을 쥐자마자 사라지기 마련인 감정으로 부질 없다. 어디까지나 법에 따른 무임승차 아닌가. 굳이 입을 열 것조차 없이 만고풍상의 얼굴로 ‘표 주시오’ 소리를 대신하면 그만인데 이따금 서먹하다.

대여섯 노년이 한꺼번에 몰려 손을 내밀 때는 더구나 민망하다. 창구 직원과 눈을 맞추는 순간의 기분이 영 어줍다. 불운한 차례 탓에 적자투성이 지하철의 눈치손님 노릇을 일시적으로 대표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거듭 공연한 자격지심이다. 무표정하게 건넨 표때기를 집어 들면 끝날 일이려니와, 깐깐한 직원은 증명거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딱 한번 걸려 2구간짜리를 두말 없이 샀다. 한편 서운하고 한편 즐거웠다. 하필이면 그날 집에 두고 온 ‘경로우대증’ 생각이 간절하고, 칠십을 지나도 한참 지난 쭈그러진 모과상을 만 65세 미만으로 보아 준 ‘배려’가 고마웠다.

고령화 사회, 저출산 쇼크에 잘못 없이 눈치 보여

파고다 공원 같은 양로 공간을 질주하는 땅밑으로 전국에 확산시킨 양, 노인들의 지하철 혜택이 이래저래 크다. 매우 커 미안할 지경인데, 출산율 1.08명의 충격에 대면 지극히 한가한 화제다. 오죽하면 신문이 ‘소(少)인구 재앙’을 들고 나왔을까. 그때마다 대두되는 문제가 고령자층을 위한 젊은 세대의 부담 증가다. 때문에 생길지 모를 세대 갈등을 미리 걱정한다.

저 먹을 몫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로 질긴 가난 속 다산(多産)을 억지로 자위했던 사회다. 하다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노래를 억세게 불렀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쟎다’는 표어를 미구에 또 내세워 남존여비를 꾸짖었다.

평균 수명 연장은 생활의 질이 나아지면서 생긴 건강 제일주의 덕이지만, 그전에 이미 드셌던 조로증 타파의 사회적 공감대를 부인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선진국형 양상으로 치거늘 그게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아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고 야단들이다.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취약하거나 아예 없는 고령자의 마음은 그만큼 어색하고 겸연쩍다. 저지른 잘못 없이 젊은 축들에게 눈치가 보여 반거들충이 신세를 한탄해야할 판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경험한 장수대국 일본의 예를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뾰족한 방법이 별반 없기는 매일반인 모양이다. 한국의 급격한 변화에 비해 하락세가 다소 완만할 뿐 기본적으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듣는다.

‘상팔십(上八十)이 내 팔자’라는 속담이 있다. 가난한 것이 제 팔자라는 뜻이다. 처음 80년을 낚시질로 달래고 나중 80년은 짐승으로서 영화를 누렸다는 강태공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드시 이만한 옛이야기에 빗댄 유세 부리기는 아닐 망정 오늘의 노년은 내남없이 지독한 풍파를 겪었다. 일제 식민지, 전쟁, 혁명을 거쳐 살아 남은 까닭에 걸핏하면 젊은이들의 충동적 경박을 나무란다. 죽을 고비 속에서 오히려 삶을 갈망한 사례를 들어 일상에 번진 그들의 약한 내구성(耐久性)을 탓한다.

생산성 최고가치인 세상을 살만큼 산 자의 걱정

그건 그것대로 싫다. 좋은 육자배기도 한두 번이라는 이치를 떠나 시대 시대의 고통을 양단간에 하나로 뭉뚱거리면 곤란하다. 밥의 문제가 절실했다면 혹독한 경쟁을 비롯한 백인백색의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는 죽음에 이르는 병마냥 늘 숨가쁘다. 왕년의 회고담은 그토록 덧없다. 어쩐지 초라한 지하철의 노약자석 기침으로 들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같은 목적지를 따로따로 달리는 엇박자를 면하기 위해 서로 이해를 높이는 게 수다.

그래서도 ‘1.08 쇼크’로 한방 먹은 가슴이 아직 얼얼하다면, 호박죽에 용 쓸 힘마저 없는 늙은이의 엄살로 칠 것인가. 생산성을 모든 가치 판단의 윗줄에 놓는 세상을 살만큼 산 자는 그러나 감히 걱정한다. 막 피어나는 청춘과 한창 삶의 중동을 구가하는 중견들의 앞날을 말이다. 20~30년 후쯤에는 또 다시 이런 형국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마음이 절절하다.

아들의 지게에 앉아 고려장을 가면서, 자식의 안전한 귀로를 위해 나뭇가지를 똑똑 꺾던 전설의 어머니 흉내는 언감생심이다. 입이 부끄러워서도 못한다. 다만 진심이다. 15년 동안 애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어떤 마을 생각이 슬프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최일남
· 소설가
· 前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작품: <흐르는 북> <서울사람들> <누님의 겨울> <석류> 등    
      


제2회 실학산책 추가 프로그램 안내

제2회 실학산책이 5월 17일(수)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15일 프로그램을 참가자 만원으로 참가 못하신 분과 실학박물관 기공식(오후4시) 참관을 희망하시는 분을 위해 15일 프로그램(예정대로 진행)과 별도로 추가된 프로그램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프로그램◈
1. 제목: ‘수원화성에 어린 실학정신-과학정신과 기록문화’
2. 일시: 5월 17일(수) 9:00 ~ 18:00
3. 장소: 수원, 남양주
4. 집합장소:
서울지역→ 양재역 7번출구 서초구민회관 앞(8시 50분)
수원지역→ 화성 행궁 입구 매표소 앞(10시)
5. 산책코스:
- 수원화성, 행궁, 화령전
- 남양주 다산유적지(* 실학박물관 기공식 참관)
6. 동행 강의: 김준혁(학예연구사)
7. 참가비: 1만원(점심 및 간식)

참가방법: 전화신청 ☎ 02-545-1692
- 선착순(40명)
- 마감: 5월 16일 (화요일) 12시까지
- 전화는 근무시간(오전9시~오후6시)에만 받음
- 학생 환영(학생은 참가비 면제)

▶자세한 내용 보기

.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