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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싹쓸이의 추억 / 정지창

문근영 2011. 2. 1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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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쓸이의 추억


5·31 지방 선거를 목전에 두고 각종 여론조사는 여당의 완패와 야당의 완승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이 싹쓸이 한 이곳 대구 경북 지방은 물론이고 전국적인 야당 싹쓸이 현상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듯한 분위기다.

정치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이러한 흐름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하는 안타까운 심정은 숨길 수 없다. 정부 여당에 대한 실망과 거부감이 야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로 나타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것이 꼭 싹쓸이의 형태로 귀결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소수지향자의 후회와 믿음

사실 나는 천성적으로 야당 체질인지 지금까지의 각종 선거에서 대부분 낙선자에게 투표해왔다. 대학 진학 때도 담임 선생님이 강력히 권하는 영문과를 마다하고 독문과를 택한 것도 일종의 소수지향적인 천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니 역시 줄 긴 쪽에 붙는 것이 유리하고 편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전공만 하더라도 영어나 영문학을 택했더라면 요즘 같은 영어 세상에서 훨씬 편안하게 큰소리치며 지낼 것 같다. 세상 경험이 많은 담임 선생님의 충고를 흘려들은 것이 후회가 될 때도 있다.

특히 전국민을 영어 사용자로 만들려는 정부의 어문정책과 어떻게든 내 자식만은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세계시민으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만들어낸 조기 영어교육의 광풍 앞에서 나 같은 제2외국어 전공자들은 존립 근거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리고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 웬만한 지방대학에서는 독일어나 불어, 러시아어 같은 인기 없는 외국어 학과나 철학과, 인류학과, 사학과 같은 인문학과는 점점 비인기 학과로 전락하여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인기 없는 학문, 다수보다는 소수의 의견을 대변해줄 사람도 필요하다는 믿음과 함께 역사적 정당성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오기 같은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이 온통 한 가지 색깔 뿐이라면 얼마나 단조롭고 답답하겠는가.

자유롭고 지혜로운 선택을 향하여

흔히 말하는 문화적 다양성이란 이러한 단색문화(모노 칼쳐)의 숨막히는 전체주의와 획일화를 벗어나려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이자 생존 전략이다. 우생학적으로도 다양한 교차교배가 종족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농사도 단일 작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재배가 토양의 황폐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막상 투표 당일이면 나는 여러 가지 유혹에 시달린다. 우선 내가 찍는 후보는 늘 낙선하니까 괜히 헛수고 할 필요 없다는 자포자기식 패배의식이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찍은 한 표는 아무 의미도 없이 사표로 묻혀버릴 터이므로 기왕이면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계산이 나를 다른 후보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공약이나 당에 관계 없이 그놈이 그놈이니 주변의 누구인가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후보를 찍어주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논리도 고개를 치켜든다.

싹쓸이가 당연시되고 소수의견을 공개석상에서 내놓기가 불편한 풍토에서는 아무리 비밀이 보장되는 투표장에서도 정말 자유롭고 지혜로운 선택으로 향하는 길은 숱한 유혹을 헤쳐가야 하는 천신만고의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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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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