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이문구를 읽으며 / 정지창

문근영 2010. 12. 19. 10:06
202

 

이문구를 읽으며


얼마 전 큰 맘 먹고 이문구 전집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들 가운데도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한 터에 새로 25권이나 되는 전집을 서가에 보태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문구 전집은 마땅히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관촌수필』등 젊었을 때 읽었던 작품들을 곱씹어가며 다시 읽는 맛도 새삼스럽지만 데뷔작이나 초기 작품들부터 차근차근 한 작가의 발길을 따라가는 재미로 올 여름더위를 잊고 있다. 게다가 나같은 충청도 출신은 이를 통해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고향의 언어를 다시 듣게 되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크다.

수천년 농경문화를 담아내는 그릇

이문구의 언어는 단순한 충청도 사투리라기보다는 20세기 후반의 대한민국 농민들이 소멸하는 과정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세필(細筆)이라고 할 수 있다. 송기숙의 전라도 사투리나 박경리의 경상도 사투리, 홍명희의 서울 사투리가 각각 그 지역 민초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수단인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문구의 경우에는 사투리가 특유의 만연체 문장과 어우러져 평론가 임우기의 말대로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가 혼융하는 교감과 교친의 문체를 형성한다. 한마디로 이문구의 충청도 사투리는 수천년 간 누적되고 전승된 농경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인 셈이다.

이문구의 농촌 풍속화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처럼 사실성과 해학이 넘친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이문구는 ‘소멸하는 계급으로서의 한국 농민’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1941년에서 2003년까지 그가 살았던 시대는 바로 농민의 해체와 농경문화의 소멸이 국가의 일관된 정책에 의해 추진된 역사적 격변기였기 때문이다.

자족적이고 조화로운 공동체로서의 농촌 마을(가령, 관촌 마을)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유토피아일 뿐이다. 그렇다고 안온하고 풍요한 삶이 보장되는 농촌이 실현 가능한 미래의 꿈으로 제시되지도 않는다.

‘마지막 농민작가’가 아니길

오히려 「장곡리 고욤나무」의 늙은 농부는 시대와 자식에 대한 환멸을 자살로 항거하는 게 고작이다. 농촌인구를 전국민의 5% 이하로 줄이겠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발표 이후 꾸준히 추진돼온 정부의 농업포기정책과 UR(우르과이 라운드), WTO(세계무역기구), IMF(국제통화기금), FTA(자유무역협정)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영어 약자들의 공세로 이제 대한민국의 농민은 자살 충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문구의 구수한 입담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농민은 멸종 위기에 몰린 동물처럼 서글프고 안쓰럽다. 그가 ‘마지막 농민작가’로 문학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