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Re: 돌담 단상(斷想)

문근영 2010. 11. 19. 14:08

 

- 돌담 단상(斷想)


 

 벌써 십년전인가.. 한때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렸던 ‘베스트 셀러’에 유홍준(兪弘濬)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이 있었는데 당시 이 책으로 하여 너도 나도 ‘답사(踏査)바람'에 불려서 어느 유적지에나 가 보면 이 책을 아예 끼고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나도 그 부류 중의 한사람이 되어 책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거의 대부분을 “踏査” 해 보았고 또 그 책을 읽고나서 더러는 오자(誤字)나 의문점(疑問点)이  있는듯 하여 그 부분에 대하여 유교수와 e-mail를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마다 유교수는 친절하고 성의있는 회답을 해 주고 내 이름이 좀 어려운 글자인데 꼭  한문(漢文)으로 쳐서 보내던 기억이 난다.

 이 분이 “우리 문화유산 답사의 길눈이”로서 잠언(箴言)이 되다시피 한 유명한 말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인데 이를 줄여서 흔히 “아는만큼 보인다.”라고 하여 이 말은 지금도 관심있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회자(膾炙)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돌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1권 첫머리의 <남도답사 일번지>를 보면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밑의 월남사지(月南寺址)를 지나며 주변의 풍광과 문화유적들을 극찬하며 서술하기를  “...월남사터는 상처받은 대로 정취어린 곳이었다. 탑전마을로 들어가는 과수밭 탱자나무 울타리도 예쁘고, 대밭으로 둘러져 있는 집들의 모습도 아취있게 느껴졌다. 언젠가 여름답사때 삼층석탑 앞집 ‘돌담’을 타고 피어오른 능소화(凌宵花)는 얼마나 예뻤던지...” 라고 적고 있다.

 내가 이 부분을 읽으며 섭섭했던 점은 어째서 능소화의 화려함에 취하여 가장 한국적 정취가 어려있는 “돌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이 월남마을의 ‘돌담‘은 어느곳 보다 정취가 있고 볼 만 하였는데도....!

 

 전국에 흔하게 산재하여 있는 이 ‘돌담문화’에 대하여는  내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 방면의 모든 책에서 좀체로 발견할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어디에나 돌은 흔했으므로 (그동안 “근대화 과정(?)"에서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전국 어디서나 ‘돌담’을 흔히 볼수 있는데 여기에는 각 지역마다 제나름대로 고유한 특색이 있음을 발견할수 있다.

 그것도 그 지역의 정서(情緖)와 궤(軌)를 같이하여 우선 전라도 특히 전라남도의 돌담은 그 쌓은 기법(技法)이 참으로 정교(精巧)하다.

 경상도의 돌담은 대부분 흙을 사용하여 접착하며 돌을 쌓았는데 여기의 것은 돌만을 사용하여 높게 그것도 폭이 좁게 쌓아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돌만을 중층(重層)으로 좁고 높게 쌓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예로부터 전라도지역을 예향(藝鄕)이라 부르고 예능(藝能)의 달인(達人)들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볼때 이것이 작은 일 일지라도 예사롭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에 비하여 내가 사는 충청도지역을 보면 높게 쌓지도 않고(못하고?) 폭도 넓어서 수수한 자연미는 있을지언정 전라도의 그 것에 따라가지 못한다.

 

 이곳 천안(天安)에서 가까운  아산(牙山) 송악(松嶽)에 가면 <외암리 민속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이 ‘돌담구경‘을 실컷 할수가 있다.

  가끔 이곳에 가보곤 하는데 이곳에는 다른 무엇보다 온 동네가 거대한 ‘돌담’으로만  이루어져 이 ‘돌담’들이 하나의 큰 구경꺼리가 된다.

 고색창연한 건물들도 많고 옛 정취가 물씬 하므로 사진작가 등의 "헌팅장소"나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자주 사용된다고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이 ‘돌담’이 장소선택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얼마전 제주도에 갔다가 처음으로 <우도>라는 곳을 건너가 보았는데 다른 곳보다 특별하게 볼 것은 별로 없고 다만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아래 쪽으로 밭과 밭사이를 가로지르는 끝없는 ‘돌담’만이 눈에 들어 왔다.

 “돌” 하면 우선 제주도인지라 제주의 ‘돌담‘이 떠오르는데 이곳은 돌이 가볍고 “커팅”이 잘 되어서 인공으로 잘라 맞추어 치밀하게 높이 쌓아 올린곳도 볼수 있지만 자연석을 일렬(一列)로 층층히 쌓은 것을 보면 희한하게도 느껴진다.

 다른곳에도 산재되어 있지만 특히 북제주 세화(細花)에서 비자림(榧子林)으로 유명한 송당리(松堂里)들어 가는 주변에서 자연스런 돌담을 많이 볼수 있다.

 다만 돌들이 모두 볼품이 없고 천편일률적으로 검은색이어서 단조롭지만 그런대로 제주의 좋은 풍광과 어울려 볼만하다 하겠다.

 

 작년에 전라도 정읍에 사는 지인(知人)의 선친 비문(碑文)을 지어 준 적이 있어서 알게 된 사실(史實)인데  부안김씨(扶安金氏)인 이 집안은 우리가 잘 아는 마의태자(麻衣太子, 鎰)의 후손으로 그 중시조(中始祖)로 지포(止浦)김구(金坵)라는 훌륭한 분이 있는데 고려시절  젊은 나이에 “제주판관”으로 수년간을 임직하였다고 한다.

 이 분이 제주에 있을때 그 흔한 돌들을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는법을 섬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는데 지금 보는것과 같이 밭과 밭사이를 “돌담”으로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주어 분쟁의 소지를 없애 주었다고..

 이 돌담을 제주에 갔을때 알아보니 <잣벡>이라 부르고 동네에 있는 것은 <올렛담>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이 “지포 김구”라는 분에 대하여 제주사람들이 지금도 그 업적을 잊지않고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제주민속박물관>에  송덕비(頌德碑)를 세워 놓았다고 한다.

 

 *<돌담님>이 이보가 ‘돌담’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 본적이 있노라고 “꼬리글‘을 달았더니 무언가하고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 내용도 별것도 아닌 두서없는 글로서 지면을 어지럽힙니다.

 

 그래도 “돌담”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심심산골의  초여름 밤에 하늘의 별들은 하얗게 부서지고 초가집을 두른 나지막한 “돌담”위로 노오란 호박꽃과 잎들이 무성히 우거졌는데 이를 조요(照耀)히 비추며 떠오르는 ‘둥근달“....등의 풍경입니다. ㅎㅎ


 * 마지막으로 지포(止浦) 김구(金坵)의 <落梨花>라는 시를 감상하기 바랍니다. 700년전에 어느 “돌담”위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

 

 

              落 梨 花 (낙리화)


 飛舞翩翩去却回(비무편편거각회)

      - 춤추듯이 펄펄 날아 떠나갔다 또 돌아와

 

 倒吹還欲上枝開(도취환욕상지개)

      - 바람 타고 가지위에 다시 올라 피려하네.

 

 無端一片粘絲網(무단일편점사망)

      - 무단히 한 조각이 거미줄에 붙게 되니

 

 時見蜘蛛捕蝶來(시견지주포접래)

      - 때때로 거미란 놈 나비 잡자 다가오네.

 


 <해설>; 지는 배꽃에 대한 애상을 애써 희화화(戱畵化)한 시이다. 떨어지는 꽃잎이 춤추듯이 너울거리며 날린다. 꽃잎이 워낙 가볍다 보니 제멋대로 날리다가 다시 방향을 선회하여 돌아오기도 한다. 어떤 때는 밑으로 떨어지다가도 바람에 휩쓸려 다시 위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그 모습이 마치 다시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 원래대로 피어있는 모습이 되고싶어 하는듯도 하다. 그 중에 꽃잎하나가 어쩌다가 거미줄에 걸렸다. 펄펄 날다가 거미줄에 걸린 모습이 마치 나비가 날다가 걸린것같아 거미란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잡으려고 달려든다.

 지는 꽃잎이 다시금 가지위에 올라 피려고 한다는 것은 시들어가는 꽃에 대한 작자의 안타까움이 투영(投影)된 표현이다. 사실은 저 지는 꽃처럼 자신의 청춘도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며 다시 피려고 하는 꽃잎처럼 자신도 다시한번 인생의 봄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계절의 순환이나 인생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수 없는 것. 너무 부질없는 욕망에 집착하는것도 청승맞은 짓이어서 직접적인 감정의 표출은 자제하고 있다. 때마침 거미줄에 걸린 꽃잎을 나비인줄 알고 잡으려 달려드는 바보스런 거미가 눈에 들어 온다. 제법 우스운 그 장면에 애써 주의를 돌림으로써 스스로 상춘(傷春)의 마음을 누그려 본다.


 * 멋있는 시 아닙니까? 여기에 한시감상(漢詩鑑賞)의 즐거움이.......!


                                                                  - 이보(以甫) -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