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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은 학자를 칭송하면서 늘상 하던 말의 하나가 “정주(程朱)를
통해서 수사(洙泗)에 이른다”라고 했는데, 이는 정자(程子)나 주자(朱子)를 익숙하게 알아야 공맹(孔孟)의 유학 본래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얼마 전 필자는 위당 정인보(鄭寅普)의 문집이 번역되어 출간한 사실을 기뻐하면서 “위당을 거쳐 다산에 이르는 우리는 그 출간에
기쁨을 금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가끔 다산을 더 알려고 위당의 글을 읽어보면, 역시 했던 말이
옳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다산선생의 한가닥 정신(精神)은 백성과 나라에 보탬이 있느냐 없느냐를 취사(取捨)하는데 있으므로 우선
백성일용(百姓日用)의 실(實)에 조험(照驗)하여 이로써 득실(得失)을 결(決)하였나니, 선생의 경학(經學)은 민중적 경학이라 어떠한 특수문호에
고거(高據)하던 학문이 아니오 경학이면서 정법(政法)이라 이로써 민국(民國)의 실익(實益)을 자(資) 할만큼 실구(實究)·실해(實解)하라는
공부(工夫)이다.”(다산의 생애와 업적)
“대개 조선의 수백년간 안이나 밖이나 썩어문드러져[腐爛] 어찌할 수 없음은 전혀
실(實)을 알지 못한 때문이요. 그 실을 알지 못함은 그 이유가 또 학문상 착오에 있음일세. 이같이 학문에서부터 발란반정(撥亂反正 : 혼란을
파헤쳐 바르게 돌려놓음)의 실을 거(擧)하자 한 것이다.”(同上)
다산이 232권에 달하는 방대한 경학연구서를 저술하여
공맹(孔孟)의 경전(經傳)을 주자학에서 벗어나 본래의 뜻을 찾아 나선 이유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위당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치의
혼란과 사회의 부란(腐爛)이 학문상의 착오, 곧 실을 떠난 경전의 해석에 있다고 믿고, 일반 백성이 실을 알아 몸소 실천이 가능한 이론, 즉
민중적 경학으로 재해석했다고 위당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당의 결론적인 주장은 더 감동적입니다. “선생의 마음을 알려고 힘쓰는
자는 얻을 것이요 사색하는 사람은 찾으리라”라고 하여 다산을 연구하여 그의 사상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얻어내고 찾아낸다고 했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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