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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론사 세무조사 / 김민환

문근영 2010. 10. 2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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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세무조사


뉴욕타임스 1960년 3월 29일자에 전면광고가 하나 실렸다. 미국 남부에서 인권운동을 하다 위증죄로 피소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변호사 비용을 모금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고 문안 가운데는 당시의 남부 흑인 인권운동 탄압사례가 적시되어 있었다. 알라바마 주립대학 학생들이 흑인 인권운동 지지 데모를 하는 걸 막기 위해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의 경찰당국이 학교 식당 문을 잠그고 학생들을 굶겼다든가, 킹 목사가 7회나 경찰에 체포된 기록이 있다는 내용 등이 요지였다.

“현실적인 악의(actual malice)가 없는 언론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광고가 나가자 몽고메리시 시의원 겸 경찰 책임자인 설리번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경찰이 대학 식당 문을 닫은 적이 없고, 킹 목사가 체포된 회수도 일곱 번이 아니라 네 번 이라고 주장했다. 설리번은 그 광고가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신문사와 광고 의뢰인 4명을 상대로 50만 달러를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인 몽고메리 순회재판소는 뉴욕타임스의 불법성을 인정해 50만 달러를 설리번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알라바마주 최고재판소도 1심 판결을 지지했다. 이 사건은 결국 연방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심리 끝에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뉴욕타임스에 책임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재판을 통해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언론이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유로운 토론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며, 공직자의 공무 수행에 관한 자유로운 공개토론은 미국 정치행태의 기본이고, 현실적인 악의(actual malice)가 없는 언론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문의 판결문을 남겼다. 이 판결을 내린 뒤 언론의 공격을 받은 공직자가 비판자인 언론의 현실적인 악의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정립되었고, 이로써 표현의 자유는 한 겹 더 두터운 나이테를 두르게 되었다.

언론자유의 지평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지성사 발전에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까지 평가 받는 것이 바로 이 현실적인 악의의 원칙이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원칙이야말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시정에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상식으로 통하던 규범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했다 하더라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덮어두고 만다. 그런 걸 꼬치꼬치 캐고 따지다간 오히려 협량한 사람으로 몰린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접할 때마다 현실적인 악의의 원칙을 떠올릴 때가 많다. 이번 세무당국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도 엄연한 기업이고 기업의 투명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세무조사 이상으로 좋은 수단도 없다.

악의가 악의를 낳는 악순환, 공론형성 과정만 뒤틀릴 것

그러나 이번에 세무당국이 조사대상을 몇 개 사로 한정하면서 거기에 굳이 조선일보를 포함시킨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조선일보는 다 아는 바지만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도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도 세무조사를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조사를 하고도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빈축을 샀지만,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조사가 지나치게 엄격했고 처벌도 가혹했다 하여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치하에서 이 신문사는 또 세무조사를 받는다. 정부에서는 악의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KBS도 포함시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논점은 KBS가 들어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세무당국의 결정에 악의가 있느냐 없느냐가 논쟁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가 정부를 비판하는 걸 보며 악의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믿을 사람은 몇이나 되며, 정부가 조선일보를 세무조사한다는데 거기에 악의가 개재하지 않았다고 믿을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악의가 악의를 낳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공론형성 과정만 심각하게 뒤틀릴 것이다. 참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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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환
· 고려대 교수 (1992-현재)
· 전남대 교수 (1981-1992)
·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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