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삼화사의 창건은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신라 진덕여왕 4년(650) 이후 자장율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삼화사가 처음부터 대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절 이름조차 제대로 없는 작은 토굴의 수준이었다.
삼화사가 역사의 전면에 얼굴을 드러내게 된 것은 사굴산문으로 편입되는 문성왕 13년(851) 이후의 일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삼화사는 ‘삼공암(三公庵)’이라는 최초의 사명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삼화사는 명주 사굴산문의 수사찰로 사세를 거듭 확장해 나가게 되었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통일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재산을 잃은 후삼국 유민들의 슬픔과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개태사를 비롯한 전국의 인연있는 사찰에서 천도제를 베푸는 등 민심수습에 총력을
기울여 나갈 무렵 삼화사를 민심위무의 근거사찰중 하나로 삼았다는 것은 영동지방 최대사찰로 성장해 있었
던 것이 아닌가한다. 이때 태조 왕건이 절 이름을 삼화사로 고쳐 부르게 했다고 한다.
당시 삼화사가 있던 자리는 원래 무릉계곡 입구의 평지였으나, 1979년 중대사 터였던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두타산 삼화사 일주문
▼삼화사 입구
▼천왕문
▼삼화사 전경
▼삼화사 삼층석탑(보물 1277호).. 신라말~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적광전
▼적광전과 삼층석탑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1292호)..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노사나불 좌상으로
왼쪽 어깨와 양손, 몸 아래 부분은 없어졌지만, 얼굴과 상반신 부분은 잘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삼화사 경내
▼두타산성에서 바라 본 무릉계곡 맞은편 부속암자인 관음암의 전경
▼삼화사앞 무릉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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