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윤증선생 후손의 약속, "절대 훼손치 말라"

문근영 2010. 9. 4. 12:57

7일 1만여점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기증...일제, 한국전쟁도 버텨내
2009년 07월 07일 (화) 17:13:14 이영철 기자 panpan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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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선생 후손들의 '선조 유물'에 대한 보존의지를 알 수 있는 글씨가 윤증선생의 초상 옆에 쓰여 있다. "첫 초상이니 절대 훼손, 오염치 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종가 가운데 최대의 문화재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논산시 노성면 윤증선생의 종택. 선생의 종손 윤완식(54)씨는 7일 오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변평섭)에 소장 유물 1만643점을 기탁했다.

이 유물은 영구기탁으로써 그동안 변평섭 원장이 '우리 문화유산 찾기'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이후 첫 성과물이었다.

윤 씨가 기증한 유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744년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이모본(移摹本, 다르게 모사된 영정)과 더불어, 윤증 초상을 제작한 연혁을 기록한 『영당기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초상화의 역사적 변천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증식 현장에서 공개된 초상은 모두 4점. 각기 시대가 내려오면서 정면과 측면 등으로 여러 장 모사된 것들이다.

   
윤증선생의 후손 윤완식씨가 7일 오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윤증선생 유물 일체를 기증했다.

문화재위원 강관식 교수(한성대)는 윤증 초상이야말로 국보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윤증 선생의 여러 초상을 둘러보면서 기자의 눈에 띈 것은 가장 먼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의 초상이다.

이 초상 옆에 쓰여진 "이 처음으로 그려진 그림은 절대로 손상이나 오염시키지 말라"는 몇자의 글씨가 당시 사람들의 유물 보존 의지를 읽게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윤완식 선생의 증조부 윤하중(尹昰重) 선생은 서울에 있는 단성사를 인수하여 사업가로 나서려던 계획을 접고, 고향에 남아 고택과 선대의 유물을 지키는 데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윤증고택 전경.

한국전쟁 당시에도 후손들은 선대의 유품을 땅에 파묻어 화를 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명재 고택은 수 차례에 걸쳐 도난을 당했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적도 적지 않았다.

윤완식 선생의 어머니 11대 종부이신 양창선(91)씨는 기증이 결정되고서 사흘 밤낮을 눈물로 지새웠다. 후손의 능력이 부족해 선조의 유품을 지켜내재 못했다는 자책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역사문화연구원의 수장고를 방문하고서는 훼손의 염려를 씻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원에서는 금번 유물수집을 계기로 특별전과 도록 발간을 통하여 일반에게 널리 알릴 계획이다. 향후 유물의 양과 질을 평가한 후, 별도의 특별전시실을 상설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종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고택 소유자의 경우, 전통음식문화 등 전통문화체험 또는 고택음악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여 다양한 체험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윤증선생의 초상 보물 제1495호.

  연구원에서는 이번의 유물 영구기탁을 계기로 많은 종중과 개인이 이 운동에 동참하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유물에 대한 일련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윤완식씨와 어머니 양창선씨가 유물을 둘러보고 있다.

   
초상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 설명이 되어 있는 영당기적. 그림을 그리기 위한 지원금 현황이 나와있다.  전라감사, 황해감사, 나주목사, 전주판관 등이 기금을 출연한 내용이다.

   
보물 제 1495호 영당기적 첫 장에 그려져 있는 윤증 고택.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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