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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안 위례성 발굴 개토제(開土祭)

문근영 2010. 8. 3. 07:45

"백제 역사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천안 위례성 발굴 주목…'역사적 정체성' 확립 계기 될 듯
2009년 11월 20일 (금) 13:08:10 천안=김갑수 기자 kksjp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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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천안 위례성. (사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 지난 16일 오전. 천안시 입장면과 북면 사이를 가르는 위례산(523m) 정상에서 조촐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속에 제(祭)가 올려졌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변평섭)이 충남도와 천안시의 지원으로 이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앞서 개토제(開土祭)를 지낸 것이다.

이날 행사가 역사학계는 물론 천안시민으로부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서울 중심의 백제 역사를 충청권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졸본부여 사람인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온 뒤 비류는 미추홀에,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각각 도움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으며, 비류가 죽자 그 신하와 백성이 모두 위례성으로 옮겨와 비로소 백제(百濟)라는 대국(大國)으로 성장했다”고 기록돼 있다(네이버 검색).

‘백제 초도(初都)설’ 천안 위례성 본격 발굴…천안시민-역사학계 주목

여기서 위례성이라는 지명을 놓고 학계는 그동안 크고 작은 논쟁을 벌여왔다. 즉 백제의 초도(初都)가 현재의 서울에 위치한 몽촌토성 또는 풍납토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뤄왔던 반면 유일하게 아직까지 명칭이 남아 있는 천안 직산의 위례성이라는 의견도 향토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개진돼 왔다.

따라서 이번 발굴을 통해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것 보다 더 오래된 유물이 나올 경우 백제의 초도는 천안 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980m 둘레의 위례성 일대에서는 3~4세기경에 사용된 토기 등의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

   
 위례성 내에 있는 우물터. 이번 발굴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곳 중 하나다. (사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특히 약 700년의 백제 역사 중 웅진(공주) 60년, 사비(부여) 120년 등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역사는 120년 정도에 불과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천안 위례성이 초도로 확인될 경우 백제 건국의 주류 세력이 충청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백제의 시작과 끝이 충청권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밝혀질 전망이다.

때문에 이완구 충남지사와 성무용 천안시장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초도 기간이 16년에 불과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이를 확증할 만한 유물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아신왕 5년(396), 멸망 위기에 처한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세력을 피해 직산으로 일시 천도하고 ‘신 위례성’이라 칭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임시 수도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번 발굴을 이끌고 있는 충남역사문화원 이종수 팀장(역사학 박사)은 “그동안 학계에서는 백제를 한성 중심의 역사로 봐 온 것이 사실”이라며 “만약 이번 조사를 통해 위례성이 백제의 초도로 확인될 경우 고대사 연구에 있어 일대 전환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종수 팀장 “결과 따라 역사 교과서 다시 써야 할 수도”

이 팀장은 19일 공주 소재 자신의 연구실에서 <디트뉴스24>와 만나 “이번 조사의 최대 목적은 과연 위례성이 백제의 초도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동시에 백제 초도에 대한 학계의 논란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완벽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이종수 팀장. 이 팀장은 "이번 조사는 백제 초도에 대한 학계의 논란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팀장에 따르면 위례성에 대한 조사는 1989년 서울대 박물관에 의해 1주일 동안 진행됐으나 그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다. 이후 1995년과 1996년에도 시굴조사가 이뤄졌지만, 산성의 축조 시기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만 확인됐다.

현재도 성 내에서는 삼족기 등 백제를 상징하는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시대의 산성이라는 주장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팀장은 “우선 토성의 축조 시기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물 주변에 대한 발굴과 성문 자리로 추정되는 주변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며 “천안의 경우 백제의 역사에서 다소 배제된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천안은 물론 충청권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의미도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발굴은 내년 초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 팀장의 말대로 과연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하는 결과물을 내놓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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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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