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조용헌의 주유천하] 남해 보리암

문근영 2010. 7. 27. 08:06

남해 보리암
보리암은 ‘행만리로’를 나섰을 때 우선순위로 가 볼 만한 영지이다. 금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해바다의 푸르름. 그리고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왜 해상사호가 이 산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기운생동’을 기를 수 있는 후천적 방법‘독만권서’과‘행만리로’

한자로 쓰인 동양고전을 읽을 때는 책 첫머리의 도입부분에서 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일 첫 장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을 말해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동양고전은 말을 길게 끌지 않아서 좋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화가인 동기창(董其昌,1555-1636)은 그림에 대해서 논한 책인 ‘화안’(畵眼)의 첫 장에서 멋진 말을 남겼다. 화가의 자질 가운데 첫째로 중요한 부분이 그림에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림을 보면 기가 느껴지고, 생동감이 느껴져야만 그 그림이 작품이 되는데, 이 기운생동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자질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말이다. 뛰어난 자질은 대부분은 타고 난다. 그렇다면 후천적인 학습효과는 없다는 말인가? 선천적인 요소를 강조하다보면 교육무용론이 대두될 수 있다. 동기창은 이러한 반론을 의식한 나머지, 단서를 하나 달았다. 후천적으로 ‘기운생동’의 감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시하였다. 그 방법이란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의 노선이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연재를 처음 시작하면서 인용했던 문구이기도 하다. ‘독만권서’를 하고 ‘행만리로’를 해야만 가슴 속 더러운 찌꺼기가 제거된다고 보았다(胸中奪去塵濁).

행만리로의 장소_ 영지(靈地)

좋다! 동기창 당신의 말에 동감하는데, ‘행만리로’를 실천한다고 할 때 어느 장소를 먼저 가보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무대포로 어디든지 가는 것이 좋은것인가? 나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와 국외여행을 많이 해 보았는데, 가장 가 볼만한 곳은 영지(靈地)라는 결론을 얻었다. 영지(靈地)는 어떤 곳이란 말인가. 영험한 기운이 어려 있는 곳이 ‘영지’이다. 한마디로 기도발 잘 받는 곳이다. 이런 곳은 대체적으로 풍광도 좋다. 자연경관이 훼손되어 있는 곳은 기도발을 잘 안 받는다. 자연의 보존 정도에 비례해서 기도발도 잘 받는다. 영지는 땅에서 올라오는 기(氣)가 좋다. 기가 좋은 지점에 서 있으면 몸이 가뿐하다. 컨디션이 회복된다. 쾌적해 진다고나 할까.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는 곳은 내가 보기에 ‘영지’가 아니다. 영지에서 잠을 자거나 며칠 묵으면 마치 풍선이 꽉 채워지는 것처럼, 몸이 빵빵해지는 체험을 여러 번 하였다. 영지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또 하나의 조건은 바로 바위이다. 암반 위에 있는 터는 기가 세기 마련이고, 기가 세면 영지가 된다. 바위에서 자면 꿈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위 위에 있거나, 아니면 바위산이거나, 주변이 바위로 둘러싸인 곳은 십중팔구 영험한 터이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발 잘 받는 영험한 수도원은 대부분 바위산에 있다. 바위동굴도 물론 이러한 터이다. 30리 밖에서도 돌출된 바위산이 보이면, 영험한 터가 하나 있겠구나 하는 짐작을 한다. 바위 다음에 영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물이다. 주변에 물이 있어야 한다. 호수가 있거나, 아니면 강이 둘러싸면서 흐르거나, 아니면 바다가 보여도 된다. 바위에서 나오는 화기(火氣)를 감싸주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물이다. 물에서 나오는 수기(水氣)는 화기를 저장해 주는 작용을 한다. 바위만 있고 주변에 물이 없으면 그 터는 속성속패(速成速敗)한다. 건조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쪽에 있는 카일라스 산이 세계적인 명산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의 모델이 바로 카일라스 산이다. 이 카일라스도 6천 미터급 산인데, 전체가 통바위로 되어 있다. 거대한 암산인 것이다. 잘게 부서져 있는 암산보다도 통으로 되어 있으면 기운이 더 묵직하고 강하다. 카일라스가 이러한 경우이다. 그런데 더 절묘한 것은 카일라스 인근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호수가 있으므로 카일라스는 묘용을 발휘할 수 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어야 하듯이 바위산에는 반드시 물이 뒷받침 해주어야만 기운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익산에 가면 미륵산(彌勒山)이 있는데, 이 미륵산 밑에는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다고 하는 미륵사가 있었다. 미륵산은 비록 400여 미터 남짓한 낮은 산이지만, 그 산 전체가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서 기운이 슈퍼미들급이다. 산이 높다고 장땡이 아니라, 얼마나 단단한 바위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륵산 앞에는 원래 주변 80리나 되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 지금은 물이 빠져서 논으로 변했지만, 과거에는 이 호수를 황등제(黃登堤)라고 불렀다. 이 호수가 있어서 미륵산은 영산이었다. 기도발이 받는 영산이니까, 백제 무왕이 그 많은 돈을 들여 미륵사라는 동양최대 사찰을 지은 것 아니겠는가. 자고로 기도발 받지 않는 사찰은 유지가 어려운 법이다. 종교는 영험이 최고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험이 없으면 돈을 내지 않는다.

바다 위의 영지 섬 _제주도, 강화도, 남해

바위가 있고 물이 둘러싸고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 영지라고 한다면, 바다에 있는 섬도 그러한 영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도교에서는 3개의 신령한 산인 삼신산(三神山)을 바다에 있는 것으로 상상하였다. 이 삼신산은 바다에 떠 있는데, 그 바다 밑에서는 거대한 거북이가 이 산들을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도교의 삼신산인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 그것인데, 이 삼신산 가운데 봉래와 방장은 후대에 와서 육지에 있는 것으로 바뀌기도 하였지만, 계속해서 바다에 있는 것으로 비정한 산이 영주산(瀛州山)이다. 제주도의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고래로부터 제주도는 육지 너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숨 걸고 항해하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육지와 좀 더 가까운 산이 없는가?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섬 말이다. 이 조건에 부합되는 섬이 내가 보기에는 두 군데였다. 하나는 강화도였고, 하나는 남해도(남해)였다. 강화도는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가까웠다. 남해도는 고려시대에 남해안 일대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진주와 가까운 곳이었다. 강화도와 남해도는 공통점이 있다. 고려대장경을 만들었던 장소이다. 팔만대장경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신비적 사고이다. 종교적 영험의 세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납득하기 어렵다. 요즘식의 합리적 사고는 아니다. 그러나 신비가 정답인지, 합리가 정답인지는 시간이 흘러야 안다. 합리라고 꼭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살아보면 안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만들었던 대장경을 이 두 섬에서 제작하였다는 것은 그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 두 섬이 영발(靈發)이 있는 영지였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바다로 흘러가는 기운을 잡아주는 천혜의 섬, 남해와 강의 꽃 강화

지리적인 측면에서 이 두 섬은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 지상전에 강한 몽골군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고, 요충인 개성과 그리고 경남 진주와 가까운 섬이었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강화도에 신령한 마니산이 있고, 남해도에는 금산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고려시대에 왜 진주인가 하는 점이다. 진주는 경상도에서 가장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남해안에서 올라오는 해산물과, 서부 경남의 평야지역에서 올라오는 물산이 집결하는 지점이었다. 게다가 남강이 도시를 감싸고 있어서 물류에도 편리하다. 서남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가려면 이 진주가 터미널이었다. 즉, 육상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최씨 무인정권에서는 진주를 비롯한 진양군 일대를 특별관할구역으로 삼았다. 돈이 많은 지역이니까 최씨 정권에서 직접 세금을 거두고, 자기들의 든든한 배후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 후기에 진주는 북쪽의 개성 다음으로 남부 지역의 거점 도시였다. 삼천포(三千浦)라는 지명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왜 이름이 삼천포인가? 포구가 3천개가 있어서 삼천포인가? 나는 그동안 삼천포라는 지명에 대해서 아주 궁금했다. 너무나 거창하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고, 특이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까 개성에서 출발하여 해안선을 따라 삼천포까지 대략 3천리 길이어서 지명이 삼천포가 된 것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꼬불꼬불한 해안가를 거리로 재면 대강 3천리가 나오는 모양이다. 개성에서 삼천포까지. 이는 뱃길이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던 고려시대에 그만큼 삼천포가 물류항구로 기능이 컸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삼천포는 진주의 코앞에 있다. 지금은 남강의 댐이 막혀서 삼천포와 진주는 뱃길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삼천포에서 진주까지 뱃길이 닿았던 모양이다. 삼천포라는 지명 자체가 생긴 이유는 개성과 진주의 관계성, 즉 진주가 그만큼 비중 있는 도시였음을 말해준다. 그 삼천포의 코앞에 있는 섬이 남해 섬이다.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이 노량해전이었고, 그 노량해전이 벌어진 곳이 남해 섬 앞이지만, 이미 고려시대에도 남해 섬은 삼천포와 진주의 앞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기운을 잡아주며, 뒷심을 버텨주고 있는 천혜의 섬이었던 것이다.

강화도의 이름이 한문으로 강화도(江華島)이다. ‘강의 꽃’이다. 임진강, 예성강, 한강의 물이 모두 강화도로 모여든다. 3개 강물이 모여드는 곳이므로, 강물을 따라 육지의 미네랄이 강화도로 모여든다. 모여드는 곳은 무엇인가 먹잘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의 꽃이다. 남해도 마찬가지이다. 지리산을 돌아 온 섬진강 물이 광양을 통해서 남해로 모이고, 진주 남강의 물 일부도 삼천포 쪽을 거쳐 남해 앞바다로 온다. 강물이 빠져 나가는 방향을 풍수에서는 수구(水口)라고 한다. 수구는 중요하다. 이 수구가 막혀 있어야만 기운이 뭉치고, 기운이 뭉쳐야만 돈이 모이고, 인물도 태어난다고 믿는다. 강화도는 3개 강물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수구이고, 남해섬도 또한 섬진강과 남강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수구 역할을 한다. 만약 이 섬이 없으면 기운이 훵하게 빠져 버린다. 지도에서 보면 한반도 남해안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남해도는 국토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거시풍수’(巨視風水)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해 주는 섬이다.

영지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해 보리암

남해는 전라도의 진도와 그 크기가 비슷하다. 넓은 섬이다. 상당수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섬이다. 그런데 이 남해에는 금산(錦山)이라는 명산이 우뚝 솟아 있는 점이 아주 이채롭다. 산의 높이가 701미터이다. 강원도와 같이 산간 지역에서 701미터라면 높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바다 해수면의 높이에서 701미터는 아주 높은 산이다. 그런데다가 온통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바위의 크기도 큼직큼직 하다. 보리암이 자리 잡고 있는 뒤편을 보면 엄청난 크기의 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 바닥도 암반이고, 뒤편도 암반이고,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영지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터인 것이다. 고려가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이 남해에서 만들어 낸 이유도 좁혀 들어가면 이 금산의 영험함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성계도 조선조 개국을 위해 이 금산에서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이성계가 기도할 때는 고려 말이다. 고려 말에 이미 기도객들 사이에서는 남해섬과 금산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보리암 종각(鐘閣) 옆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던 자리가 있다. 전쟁터에서 생과 사를 눈앞에 두고 살았던 무장 이성계는 종교적 영험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죽음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해야만 신비를 인정하는 법이다. 부도가 나서 길바닥에 나 앉느냐 아니냐를 수시로 겪어본 사업가 정도는 돼야 기도발을 받아들인다. 아무튼 이성계가 어떻게 남해 보리암에까지 가서 기도할 생각을 하였을까. 짐작컨대 왜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서 이 지역에 자주 왔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남해 보리암이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성계는 전북의 마이산 은수사(銀水寺), 임실의 상이암(上耳庵), 그리고 회문산의 만일사(萬日寺)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일대는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황산대첩이 전개되었던 남원 운봉 지역과 가깝다. 이 세 절도 역시 왜구와 격전을 치르면서 지형지물을 살피는 과정에서 알았을 것이고, 역시 영험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별을 바라보는 선가의 유적지 보리암 간성각

남해 보리암은 불교의 유적지이지만, 그에 앞서 선가(仙家)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보리암 암반 사이에 존재하는 해상사호(海上四皓)의 전설이 그것이다. 임진왜란 무렵에 남해에는 4명의 신선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바닷가의 섬에서 노닐었던 모양이다. 해상에서 주로 머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해상사호’이다. 해상사호의 본거지가 남해도였고, 금산의 보리암 일대의 바위동굴이었던 모양이다. 남해에는 천문과 지리, 그리고 병법에 통달하였던 이 해상사호의 가르침을 받은 3명의 비구니가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는 전설이 있다. 선가는 잡배들이 접근할 수 없고, 약간의 먹을 것이 있고, 기운이 강한 섬을 좋아한다. 남해는 선가(仙家)에서 좋아할 만한 섬이고, 금산은 그 전형이다. 금산은 1년 중에 반절은 항상 운무에 쌓여 있으니까 신선들이 종적을 감출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보리암이 선가의 유적지였다는 단서 하나는 절 안에 있는 ‘간성각’(看星閣)이라는 이름이다. ‘별을 바라보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왜 별을 바라보는가? 도가(선가)에서는 별을 중시한다. 별에서 에너지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가는 인체의 기경팔맥(奇經八脈)에서 돌아가는 운기(雲氣)를 중시한다. 운기가 잘 되어야만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고 나아가서는 도를 통해서 신선이 된다고 여겼다. 운기가 안 되면 꽝이다.

그런데 이 인체의 운기는 미세한 경지에 들어가면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는다. 바위와 물도 그렇지만, 더 나아가면 별이다. 대표적으로는 태양과 달이다. 특히 달이 그렇다. 보름달이냐 반달이냐, 초승달이냐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자장(磁場)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여성들의 월경도 달의 움직임과 관련되지 않던가! 보름달이 뜨면 강하게 달 기운이 들어오므로 이때는 호흡법도 바뀐다. 달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호흡법을 도가에서는 월체납갑법(月體納甲法)이라고 부른다. 영화 씨받이에서 보면 강수연이 밤에 마당에 나가 달 정기를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달의 정기를 깊이 호흡을 해서 받아들여야만 좋은 자식을 잉태한다고 믿었던 우리 선조들의 민속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달 보다 더 나아가면 별인데,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28숙(宿)도 여기에 해당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1년은 28수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이다. 7개의 별이 칠성인데, 이 칠성이 춘하추동으로 4번 돌면 28개의 별을 회전하는 셈이다. 28수와 북두칠성 다음으로 특별한 별이 삼태성(三台星)과 노인성(老人星)이다. 노인성은 겨울에 남쪽 하늘에 뜨는 별이다. 일생동안 노인성을 3번만 보면 100살까지 산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노인성은 장수를 상징하는 별이었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선가에서는 이 노인성을 유난히 사랑하였다. 옛 그림에도 보면 이 노인성은 머리 위쪽이 불룩 올라온 노인의 모습으로 의인화 되어 나타난다. 남극노인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노인성은 여간해서 보기 어려웠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었던 별이었다. 금산의 보리암도 노인성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이다.

‘간성각’ 이란 명칭은 필자가 생각건대 이 노인성을 보는 선가의 풍습을 담고 있는 이름 같다. 보리암에서 노인성을 보는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보리암을 올라가는 길이 새로 나서 자동차로 상부까지 갈 수 있지만, 과거에는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걸어가는 코스에서 보리암에 접근하다 보면 사람의 두개골 같이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는 이 바위에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구멍이 뚫린 두 개의 바위굴이 있다. 흡사 사람의 두 눈같이 생겼다. 보리암에 들어가려면 이 바위굴을 통과해야만 한다. 밑에서 이 구멍 뚫린 바위를 보면 거대한 해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두 개의 바위굴을 쌍홍문(雙虹門)이라고 부른다. 비범한 장소, 신성한 장소에 진입하려면 이처럼 기이한 동굴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쌍홍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보리암이 보통 영지가 아님을 말해준다. 신선들이 사는 곳을 동천(洞天)이라고 하는데, 이 쌍홍문이 있음으로 해서 보리암 터는 동천의 자격을 갖추었다.

행만리로의 최적지 남해 보리암

보리암은 ‘행만리로’를 나섰을 때 우선순위로 가 볼 만한 영지이다. 금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해바다의 푸르름. 그리고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왜 해상사호가 이 산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한국의 4대 관음성지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 그리고 남해의 보리암이다. 불교도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기도터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도가적인 취향이 물씬 배어 있는 곳이다. 영발이 있는 기도객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현재 보리암의 석조 관음보살상이 서 있는 지점이 가장 기가 강한 곳이라고 한다. 금산에서 내려오는 바위기운이 뭉쳐 있는 지점이다. 1년이면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소문난 기도터이면서도, 기운이 크게 오염되지 않는 이유는 해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그 해풍에서 오는 수기와 금산의 화기가 뭉쳐 있는 지점이 바로 이 관음상 앞이라고 하니까, 주유천하를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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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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