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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밭 속을 가더라도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이는 서산대사 휴정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선시禪詩로 백범 김구의 좌우명이었다. 해방정국의 와중에서 백범이 어린 백기완한테 주었다는 명함판 사진의 여백에도 백범의 친필로 이 시가 쓰여져 있었다. 1970년대 초, 우리는 백범이 70세 때, 그 특유의 떨리는 손으로 쓴 이 시 휘호를 여러 장 복사해 나누어 가졌다. 나는 지금도 족자로 표구한 백범의 이 휘호를 간직하고 있다. 어찌 감히 백범을 따라갈 수야 있을까만, 적어도 그 가르침만은 잊고 싶지 않아서다. 과연 이 시는 백범이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사람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무서운 경책을 담고 있다.
가서는 안될 길을 가면서
얼마 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 때 야당의원 한 사람이 반대토론을 하면서 모두에 이 시를 인용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하면서 감히 이 시를 인용하다니 지나가던 개도 다 웃을 일이다. 우선 세계적으로 그 악명이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전투구의 세종시 수정안 찬반토론을 하면서 웬 난데없는 백범의 좌우명이란 말인가. '개 발에 편자'라더니, 꼭 그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분별없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종시 문제는 처음부터 가서는 안될 길을 가기 시작한 것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노무현이 선거 때 '재미 좀 보자'고 눈밭 속을 함부로 걷지만 않았더라도 세종시 문제는 애초에 불거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도이전에 대한 위헌판정이 나왔을 때 노무현이 굳이 오기만 부리지만 않았어도 그쯤에서 멈출 수도 있었다. 그때, 여야간에 누가 나서서 '이건 길이 아니다'라고 외쳤어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시를 인용했던 그 의원은 물론 야당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부師傅로 떠받들고 있는 김대중도 일찍이 행정수도론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25km의 거리에 있어, 정부와 국가의 지도적 인사들이 끊임없이 긴장하며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김대중의 「옥중서신」, 1977년 11월 29일자). 세종시에 행정부가 가 있을 때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김대중의 지적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토사구팽이 출구전략인가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공약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포퓰리즘에, 그것이 결코 갈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표를 빼앗길까봐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가 결합해 마침내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선거 때문에 행정수도를 옮겨야 하는' 세계역사에 유례없는 진기록을 세우게 한 것이다. 가서는 안될 길을 가기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2007년 대선이 첫번째 기회였다. 이명박 또한 표퓰리즘의 유혹에 빼져 그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작년 9월, 정운찬 총리후보가 세종시 수정론을 들고 나왔을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대통령이 총리 뒤에 숨을 일이 아니라 대선 때 자신의 처신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국민 앞에 진정으로 사과하고, 국가전체적으로는 물론 충청권에게도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노라고 약속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고작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라는 대안 밖에 제시한 것이 없고, 그나마 세종시를 명품 선진도시로 만들기 위한 진정성있는 노력을 한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거기다 집권당 안의 의견통일조차 이루어내지 못했다. 9개월 동안 국회를 설득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없었고, 단 한 사람의 국회의원도 설득해 내지 못했다. 그래놓고 본회의 표결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자는 것은 또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그 출구전략이란 것도 어처구니 없었다.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한 마지막 호소마저도 없이 너무 쉽게 접어 버리고 만 것이다. 정운찬 총리에 대한 토사구팽에 앞서,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것이 예의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모두가 역사의 죄인이요 패자가 된 것이다. 그것은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오직 박정희와 부녀관계라는 호적만이 있을 뿐, 정치 지도자로서는 아무런 경륜도 생각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오직 정략과 고집만 있었을 뿐 그에게는 그 어떠한 고뇌도, 사려도 없었다. 수정안 부결에 야당보다 더 공이 큰 만큼 행정수도 분할에 따른 역사적 책임은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한번 길을 잘못 들면, 그것을 바로잡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을 고쳐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감히 단언하거니와 수도분할은 뒷날 두고두고 국가적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며, "당신들은 겨우 그것 밖에 안되는 사람들"로 우리시대는 역사의 추궁을 당할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세종대왕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고. '세종'이라는 이름 앞에 오직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죄과를 저지르고도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정말 세종시 문제는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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