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국보순례] [3]
경복궁 '천록(天鹿)'
입력 : 2009.04.15 22:25 / 수정 : 2009.04.15 22:25
우리는 경복궁의 상징적인 조각으로 해태(獬豸)상은 익히 알고 있으면서 천록(天祿 또는 天鹿)이라는 조각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근정문 앞 금천(禁川)을 가로지르는 영제교(永濟橋) 양옆 호안석축(護岸石築·강변의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축대)에 있는 네 마리의 돌짐승이 바로 천록이다.
이 돌짐승을 혹은 해태, 혹은 산예(狻猊·사자 모습을 한 전설상의 동물)라고 하지만, 해태는 털이 있어야 하고, 산예는 사자 모양이어야 하는데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뿔이 하나인 데다 비늘이 있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천록상이다.
이 돌조각은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선시대 뛰어난 조각 작품의 하나로 손꼽을 만한 명작이다. 다만 그 중 한 마리는 이상하게도 등에 구멍이 나 있고, 또 한 마리는 일찍부터 없어져 2001년 영제교를 복원할 때 새로 조각하여 짝을 맞춰 둔 것이다.
그런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9~?)이 영조46년(1770) 3월3일 스승인 연암 박지원(朴趾源), 선배 학자인 청장관 이덕무(李德懋)와 함께 서울을 나흘간 유람하고 쓴 〈춘성유기(春城遊記)〉에 이 돌짐승 이야기가 나온다.
"경복궁 옛 궁궐에 들어가니 궁 남문 안에는 다리가 있고 다리 동쪽에 천록 두 마리, 서쪽에 한 마리가 있다. 비늘과 갈기가 완연하게 잘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 말하기를 "남별궁(南別宮) 뒤뜰에 등이 뚫린 천록이 있는데 이와 매우 닮았다. 필시 영제교 서쪽에 있던 하나를 옮겨다 놓은 듯한데 이를 증명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했다. 남별궁은 지금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별궁이었으니 이제 와서 그 돌조각을 다시 찾아낼 길은 없다.
〈예문유취(藝文類聚)〉등 옛 문헌을 보면 "천록은 아주 선한 짐승이다.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고 하는 전설상의 서수(瑞獸)이다. 옛 궁궐에는 임금의 은혜가 백성에 미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천록이 있었다.
나는 백제 무령왕릉의 서수도 천록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다만 같은 천록상이라도 무령왕릉의 천록은 이미 세상에 나타나 당당히 왕릉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지만, 경복궁의 천록은 앞발에 턱을 고이고 넙죽 엎드려 있으면서 나타날까 말까 궁리중인 것 같은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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