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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다보면 통쾌하면서 즐겁고 기쁘기도 하지만 두렵고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옹야(雍也)」편에,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뭇 백성들을 환란에서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떤가요?”(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라고 제자 자공(子貢)이 물으면서 그렇게 하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가 답합니다. “어떻게 인(仁)의 일만 되겠는가. 반드시 성(聖)이라 할 거다. 요순(堯舜)같은 성인 임금도 그 부분에서는 제대로 다하지 못할 약점으로 여겼느니라”(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라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온갖 시혜를 베풀고 그들이 당하는 온갖 재난이나 환란을 구제해주는 것, 그것이 요순정치의 이상이었고 공자의 위대한 꿈이었지만, 그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어서 인(仁)의 수준도 넘는 성(聖)스러움에 이르는 일이어서 요순도 행여 그렇게 하지 못할까 늘 걱정하고 염려했다는 것이 공자의 풀이였습니다.
이런 대목에서 다산의 경전해석은 돋보이는 점이 많습니다. 이럴 때의 인이란 “인간을 향한 사랑”(嚮人之愛)이라고 풀이하고 성이란 “하늘에까지 사무치는 덕(德)”(達天之德)이라 풀이합니다. ‘인’의 경지도 어려운데 ‘성’의 경지까지를 실현하고픈 꿈과 이상이 요순에게나 공자에게는 있었으며, 다산 역시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살았다고 여겨집니다.
인간을 향한 한없는 사랑으로, 하늘까지 사무치게 하는 성자(聖者)적 자격에 이르러야만 천하를 통치하는 위정자가 될 수 있다는 동양정치의 극치를 설명하는 대목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되겠다고 호화찬란한 공약을 내걸고, 사랑의 화신에 성자의 지위에 오른 양 외치는 100여 명이 넘는다는 대통령 예비후보들은 『논어』의 그런 대목이나, 다산의 그런 부분의 해석을 한번쯤이라도 읽어보고 국민 앞에 선다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의 수양에만 국한하여 인(仁)을 ‘마음의 덕’(心之德)이라던 중세를 넘어 대인적, 대사회적 사랑이라는 다산의 ‘인’의 해석도 새롭게 마음에 새겨둘 필요는 없을까요. ‘인’과 ‘성’에 이르는 그런 정치가가 그립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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