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폭력과 전쟁에 저항하라! 비폭력 직접행동
폭력을 사회화하는 의사비폭력(擬似非暴力)체제 극복을 위해
환경과 반차별 소책자 시리즈 '폭력론 노트 : 비폭력 직접행동이란 무엇인가?' / 2003
리장
오랜만에 책장속에 잠들어 있던 영혼을 깨어본다.
고지식해서 그런건지 철이 없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바꿔보자' '운동이 삶이 되는 그런 삶을 살자' '나라도 구질구질하게 타협하진 말자' 하고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뛰어든 시민단체 활동 속에서 읽었던, <폭력론 노트 : 비폭력 직접행동이란 무엇인가, 무까이꼬오, 2003>란 80페이지 남짓한 소책자를 집어들었다.
이 책은 당시 내게, 말 그래도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명확한 답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가 던져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자유로운 몸이 되어,
서대문형무소가 내려다 보이는 서대문도서관에서 일하는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얻어먹고,
세차게 유리창을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도서관 휴게실에서 책을 읽어 나간다.
국가, 폭력장치 그리고 의사비폭력체제
평택, 포스코 그리고 레바논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거대한 폭력장치를 둔 국가체제에 의해, 모든 민중들의 자유, 인권, 평화, 민주주의가 규제되고 억압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체제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국민'이라는 개념으로 분류, 등록, 지배하면서, 국가의 주권을 장악한 권력자(소수 정치인과 자본가)의 지배와 이익을 위해 우선 존재해 왔다.
평상시, 국민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있다가 위기상황에 처할 때면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국가조차 팔아먹고 국민을 배신하고 도주하는 수많은 역사는 무엇보다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일 제국주의에 의한 조선 식민지배시대를 기억해보라!
지배자들이라 불리우던 사람들 중 민중들과 함께 저항하고자 했던 민족투사들은 만주로 연해주로 상해로 쫓겨나갔지만, 일본군에 기생하여 '친일이라는 치적(?)'을 쌓은 자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것을 보라!
이런 국가체제와 지배자라 불리우는 이들에게 진정 주권을 맡길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그리고 거대한 정치단체일뿐인 국가체제는 항상 국익과 공익을 주장하면서 이것들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 크고 작은 분쟁을 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폭력장치들이 무섭게 가동시켜 왔다.
평택 미군기지이전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700일 동안 촛불을 들고, 황새울 들녘에서 농사 짓고자 할 때,
비정규직 하청건설 노동자들이 그들의 삶과 생존을 걸고 처절하게 몸부림 칠 때,
미사일과 탱크가 아닌 평화를 바라는 팔레스타인, 이라크 민중들이 맨 몸으로 저항할 때,
특히 우리들이 권력, 폭력에 조금이라도 맞서려고 할 때,
금방 눈앞에 튀어나오는 것들을 보면, 언제나 경찰과 군대뿐이다.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북한, 쿠바, 베네수엘라 등 세계 곳곳의 나라들은 나라밖 신제국주의 국가연합체(미국,영국,일본,이스라엘,한국 등)의 폭력장치들에 의해,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민중들이 이유없이 탄압과 미사일 폭격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큰 빛을 쏘아올리는 지구 파멸의 바벨탑처럼 거대한 국가체제의 폭력장치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인 것이다.
국가체제의 폭력장치는 이제 우리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침해하는 것으로 모자라, 더욱 조직화되고 기구화되어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법률' '법치국가'라는 미명하에 군대, 경찰, 재판소, 감옥 등은 인권을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국가의 부조리.부정의한 행위까지도 당위화하는 역할을 일선에서, 그들이 말하는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체제 속의 폭력의 사회화(일상화)가, 국가 지배기구인 민주주의 안에서 더욱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확실히 국민은, 모든 개인은 법앞에 자유롭고 평등하며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권보장, 삼권분립, 국민주권 등은 어디까지나 법전에만 나와있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법치국가로서의 계급적 불평등, 부자유를 고정화하고 자본독재의 본질을 은폐하는 위장술을 벌이는 것에 불과하다.
흔히 말하길,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체제의 폭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문제는 자연히 풀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순적 국가체제의 폭력장치들을 국민들이 모르게 계속 숨기려는 지배자(정치인+자본가+언론)들은 이 사회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개인폭력차원의 문제로 치부하여 버린다.
그 예가, 바로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벌어지는 시위에서, 시위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전투경찰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이들에 대한 동정표를 얻게한 것이다.
이 작전은 어느정도 먹혀 들어서, 국가체제의 국민들이 시위나 집회를 이제 자신의 권리나 자유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은 '불법' '폭력'이라는 관념의 색깔눈을 가지게 만들어 버렸다.
↑ 평화를 원한다! 직접 만든 PEACE 표시
의사비폭력체제의 극복을 위한 비폭력 직접행동
이렇게 국가에 의해 조정 당하고 지배받는 국민들은 더욱 현혹의 눈가림 막에 눈이 멀어, 더이상 폭력이 폭력으로 보이지 않고 평화롭고 합법적이고 민주적이라고 보는, 사이비 비폭력 상황을 바로 '의사비폭력체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비폭력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비폭력직접행동은 단순한 항의행동을 위한 전술이나 마음가짐이 아니라,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비폭력 상황이 있어야만 가능한 '생상노동' '창조' '유희' '자치와 관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간디와 인도 민중들이 영국의 식민지배하에서 '무저항' '불복종' 소금행진이란 실천적 직접행동에서 보여주었던 아래 6가지를 의미한다.
1. 우리들 손으로 스스로 필요한 것을 손에 넣는다
2. 자기의 개인책임에서 스스로 행위한다
3. 개인책임을 명백하게 한 직접행동은 합법.비합법을 초월한 생산행위이다
4. 정치라고 하는 간접수단을 일체 부정하고 배제한다
5. 인민의 존재양식이고 그 자체로 생활과 밀착된 싸움이다
6. 생산에 대한 것을 자립적으로 나날의 생활을 관리하는 자치이다
다시말해, 우리들이 일상에서 자각하는 일 거의 없이,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하에서 기능하고 있는 '사이비 비폭력체제'가 현 국가체제의 전부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나게끔 하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회복과 탈권의 투쟁' 이라 할 수 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방법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무수히 다양하다.
그리고 여러가지 문제와 한계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하고자 하고 컴컴한 암실에서 빠져나가고자 할 때, 그 순간부터 의사비폭력체제의 환상은 깨져만 갈 것이다.
'비폭력 직접행동'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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