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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 콩쥐팥쥐와 장화홍련전 / 심경호

문근영 2010. 4. 8. 07:25

콩쥐팥쥐와 장화홍련전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 저녁 식탁에서


저녁을 먹는데 딸아이가 물었다. 콩쥐와 팥쥐가 이복 자매야? 장화와 홍련이 그런가? 음악회를 방영하는 텔레비전 화면에 어느 소녀 그룹이 나오자 갑자기 생각난 모양이다. 콩쥐가 원님하고 결혼하던가? 장화가 하던가?


장화와 홍련은 친자매야. 콩쥐와 팥쥐는 서로 아버지가 달라. 장화와 홍련은 계모에게 구박받다가 귀신이 되었으니 원님하고 결혼할 수 없지. 아들이 대꾸했다. 콩쥐는 신데렐라하고 완전히 같아. 콩쥐가 원님하고 결혼했어. 원님은 종칠품 벼슬이니까 젊었겠지, 아빠?


원님이 종칠품 벼슬이었나? 그렇다 해도 조선후기면 열대여섯에 장가들었을 테고, 정실이 있었을 텐데 새장가를 들었나? 설화니까 그렇게 꾸민 거지.  
 

계모가 전처 자식들을 학대한다는 건 설정이 이상해요. 당신도 그랬잖아요.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는 계실들이 집안을 잘 다스린 예가 많다고 말이죠. 대체 계모 자식인 팥쥐는 왜 꼭 추한 거죠? 콩쥐가 착하고 예뻐서 질투한다는 구성도 너무 단순해요.


2. 두 고전,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까지

     

과거의 것이라고 모두 고전은 아니다. 과거의 아무리 훌륭한 창작물도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제시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고전이라 부를 수 있다. 더구나 지금 우리에게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들은, 그것이 설령 귀중한 자료로서 발굴되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고전일 수가 없다.  

 

자매 이야기를 다룬 두 고전은 근세에야 소설로 되었지만, 그간 오페라와 뮤지컬, 영화 등으로 각색되어 왔다. 비록 우리 가족은 그 이야기의 구조를 온전하게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두 고전 속의 인물들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현대사회에 문제를 던진다. 


이 가운데 콩쥐팥쥐는 오랜 연원이 있다. 설화로 전하다가 20세기 초에 딱지본 소설로 정착될 때는 후반에 새 이야기가 덧붙기까지 했다.


콩쥐는 계모와 이복동생에게 구박받지만 선녀의 도움으로  꽃신 신고 비단옷 걸치고 잔치에 간다. 거기서 콩쥐는 꽃신 한 짝을 잃어버리는데, 그 꽃신을 매개로 원님과 혼인하게 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후 콩쥐는 계모와 계모의 딸 팥쥐의 흉계로 연못에 빠져 죽었다가 소생하여 복수를 한다. 전반부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유사하되, 신분차별을 넘어서려는 서민의 바람이 담겨 있다. 


1951년 12월 서울대학교 음대 주최로 콩쥐팥쥐 오페라가 부산극장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김초(金礁)가 대본을 쓰고 이진순(李眞淳)이 연출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오페라로 공연하는지 모르겠다. 1958년에는 윤봉춘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콩쥐가 왕자와 결혼을 하여 계모와 의붓동생을 용서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1970년대에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1958년의 필름이었는지 리바이벌이었는지 모르겠다. 윤봉춘 감독은 『논개』(1956), 『한말풍운』(1959), 『황진이의 일생』(1961) 등의 사극도 제작했다. 당시 사극이 만들어진 배경과 현재 텔레비전 사극이 만들어진 배경이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다. 


장화홍련전은 평안도 철산에 사는 배무룡 좌수의 두 딸이 계모와 계모 아들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죽어서 원혼이 되어 현명한 부사를 이용해 원한을 갚는다는 이야기가 골자다. 소설에서는 배좌수가 세 번째 부인을 맞아 장화와 홍련이 환생한 쌍동이를 낳고, 그 둘이 평양 부호의 쌍동이와 결혼해서 복을 누리며 살았다는 후일담이 붙어 있다. 공안(公案) 소설의 구조에 가문소설의 후일담 형식이 결합한 것이다.
 

장화홍련전은 일찌감치 1928년 9월에 김영환(金永煥) 각색, 박정현(朴晶鉉) 감독, 단성사 박승필(朴承弼) 연예부 제작의 영화로 개봉되었다고 한다. 2003년에는 김지운 감독이 호러영화 『장화홍련』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콩쥐에 해당할 수미가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이 악역이고 또 희생자여서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미국 소설의 호러 버전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 고전소설을 재해석한 창조성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3.  남자 캐릭터의 위상은


그런데 콩쥐팥쥐와 장화홍련전을 보면 가족 내에서 아동의 위치가 대단히 불안정하고 남자의 위상은 매우 위축되어 있다. 콩쥐팥쥐의 아버지는 아예 이야기의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장화홍련의 아버지 배좌수는 계실 허씨의 악행을 짐작하고 허씨를 꾸짖기는 한다. 좌수는 “우리는 본래 가난하게 지내다가, 전처의 재물이 많아 지금 풍부히 살고 있소. 그대의 먹는 것이 다 전처의 재물이니 그 은혜를 생각하면 크게 감동해야 마땅한데, 저 어린것들을 심히 괴롭게 하니, 다시는 그러지 마오.”라고 했다. 전처의 재물이 많다고 했으니, 한 집안의 재산분배 때 여성의 몫이 적지 않았고, 그 몫은 남편에게 승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배좌수는 허씨의 흉계로 장화가 낙태를 한 줄 믿고는 가문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딸의 살해에 동의한다. 그는 사대부 조관이 아닌 좌수다. 명분을 중시하는 풍조가 당시 중하층에까지 만연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장화홍련전에서 또 한 남자는 어머니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의붓누이 장화를 연못 속에 빠뜨려 죽인다. 그리고 그 순간 범에게 두 귀와 한 팔과 한 다리를 잃어 불구가 된다.


영화 『장화홍련』도 아버지 무현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친딸인 수미와 수연, 계실 은주의 갈등을 조정하지도 못했고, 수미의 광기를 지켜볼 따름이다.


 콩쥐팥쥐와 장화홍련전에서 남자들의 위상이 위축되어 있는 것은 사회현실의 반영이자 사회현실의 알레고리적 비판인가? 『장화홍련』에서 무현의 역을 배우 김갑수는 전처와 딸의 죽음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무기력한 남자 역을 참으로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4. 이야기로 비로소 고전이


고전의 계승은 고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어떤 작은 의문이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그 의미를 되생각하는 순간에 고전은 비로소 고전이 된다[werden]. 그날 우리 집 식탁에서 장화와 홍련, 콩쥐와 팥쥐는 생명 있는 캐릭터가 되었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