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茶山이야기] 송사(訟事)에 옳은 판단을 해야 / 박석무

문근영 2010. 4. 2. 02:17

송사(訟事)에 옳은 판단을 해야


송사란 요즘 말로는 소송사건입니다. 원고와 피고가 있어 서로가 잘 했다고 다투다가 결론을 못 얻으면 재판을 걸어 판결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으로 통치행위가 분화되어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절대군주시대여서 통치자에게 3권이 모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작은 제후국가로 여기던 군현(郡縣)의 관장은 작은 나라의 군주와 같은 통치자였습니다.

군현의 통치자인 군수나 현감은 송사를 해결해주는 재판권을 지닌 재판관의 업무가 특히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목민심서』의 형전(刑典)에는 군수나 현감들이 올바른 판단으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참으로 세세한 절차와 방법에 관한 내용이 무수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떻게 해야 진실을 찾아서 억울한 당사자가 없는 명재판을 해내는 일에 온갖 지혜를 열거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진실을 밝혀내는 본질적인 원칙부터 천명합니다. 청송(聽訟), 즉 송사를 심리하는 일에는 그 근본이 재판관의 성의(誠意)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바르고 옳게 판결하려는 정성된 뜻, 성의가 근본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성된 뜻을 이루려면 자신의 신독(愼獨)이 근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독이란 홀로를 삼간다는 높은 철학적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혼자 지내는 사이에도 하늘 우러러, 땅을 굽어봐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결백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지녀야 정성된 뜻을 바칠 수 있고, 그런 정성된 뜻으로 사건을 심리해야 올바른 판단을 끌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판관이 제대로 인격을 함양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양심을 지녀 공명정대한 마음으로 판단을 내려야 올바른 재판이 가능하다는 다산의 주장입니다.

과거 독재시대의 재판이 권력의 짓눌림에 못 이겨 인격이나 양심과는 거리가 멀게 재판한 결과가 많아, 최근에는 재심을 통해 억울한 재판이 올바르게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우며 힘든 일입니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결과가 치욕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목민심서』의 형전은 그렇게 많은 분량의 책도 아닙니다. 재판에 관여하는 모든 분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요.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