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茶山)의 제자 황상과 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 | |||||||||||||
| 데일리안, 2009-03-24 18:23:43 | |||||||||||||
세상에 알려진 일속산방도(23⨉32cm)는 소치 선생이 46세 때 다산 정약용(1762년~1836년)선생의 제자인 황상(1788년~1863년)에게 그려준 실경 산수화로써 1853년 3월에 그린 그림으로 소치선생은 진도 출신으로 초의선사에게서 기본적인 화가수업을 받으며 재능을 크게 인정받아서 추사 김정희와 절친한 초의선사가 소개하여 추사의 제자가 되므로 당대에 시, 서, 화의 삼절로써 중앙화단과 헌종 때 어전화가로 최고 지위를 갖게 되었으며 추사의 애제자가 됨을 자신의 실록 속에 적고 있다. 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는 초의선사(1786년~1866년)가 이 그림을 교정을 했으며 추사는 소치의 작품을 보고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한 그림이 없다”라고 높이 평가 했다.
이 그림은 남종화(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士大夫)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한 그림이다.)가의 대가인 소치가 일속산방을 방문하여 황상이 기거한 백적산 산중의 전원적 삶이 선비정신과 스승에 대한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준 인품의 큰 감동이 진하게 녹아있음을 소치는 화폭에 독자적인 거친 독필의 자유분방한 필치와 푸르스름한 담청을 즐겨 쓴 개성적인 담채 화법으로 한국적 남종화로 그린 그림의 내용이 아니였겠는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일속산방(一粟山房)은 전남 강진군 대구면 항동 마을 천태산 줄기의 백적산에 있었으며, 황상이 칩거하던 곳은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당시에 소치가 그렸던 그림같이 한눈에 볼 수 없고 저수지 앞 큰 도로에서 산 전체를 보면서 그때의 전경을 유추 해 봄은 지나친 욕심일까? 2007년 봄 필자는 강진에서 역사의 고증과 연구를 하고 있는 청광 양광식선생과 함께 일속산방(一粟山房)의 집터를 확인하고 주변정리를 하면서 황상선생의 넋을 기렸다. 다산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 왔을 때, 읍내 여섯 제자 중 한사람인 황상은 강진읍 동문 밖에서 살며 총명한 것이 눈에 띄어 열다섯 살 때부터 다산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황상은 다산이 알려준 중국 명나라 말기 초야의 숨어살던 황주성의 ‘장치원기’를 읽어주고 그대로 자신이 살고 싶은 내용을 시로써 지어 바쳤다. 이때 다산은 ‘제황상 유인첩’을 지어주며 어린 제자의 숨은 선비의 바른 마음가짐을 말해주었다.
그 후 다산선생이 해배되어(1818년) 고향에 가서 생활하는 동안 다산 내외의 결혼 60주년이 되는 회혼식(1836년)에 참석하기 위하여 천리길을 걸어서 18년동안 그리던 스승을 만나고자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갔으나 병중에 있는 스승을 뵙고 내려오다가 몇 일후 다산선생의 부음을 받고 다시 가서 제자의 예의를 다 했다 한다. 그 후 10년 뒤(1845년 3월) 스승의 제삿날 다시 찾아가 기일에 참석하니 다산선생의 큰 아들 정학연(1783년~1859년)은 감사의 표시로 ‘정․황 계첩’을 써 주면서 두 집안은 자자손손 영원토록 형제처럼 살아가자고 약조 하였다. 이 무렵 정학연과 황상은 함께 송도를 유람하였으나 정학유(1786년~1855년)는 병으로 인하여 동행하지 못했다. 이후로 정학연․학유 형제와 황상사이에 남북천리로 편지와 시문이 오고 갔으며 정학연의 주선으로 황상의 시 작품이 추사에게 소개될 수 있었다. 이때 황상은 추사로부터 “지금 세상에 이런 작품이 없다”는 극찬을 받았으며 시인으로써 존재를 중앙문단에 알리고 이후 추사형제를 비롯한 권돈인 초의선사 허련(소치) 등 당시 문예계의 중심인물들과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 또 그가 시집을 남기니 추사 김정희(1786년~1856년)와 그의 아우인 산천 김명희가 시문을 짓고 노사 기정진이 발문을 썼으며, 또 손으로 직접 쓴 ‘치원총서’가 두 권 있는데 만년에 엮었으며, 한 글자 한 획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귀중한 내용이었다.
그 후 다산이 해배되어 강진을 떠난 뒤 황상은 처자를 이끌고 대구면 천태산 백적동으로 새로운 터전을 일구고 종수와 원예에 힘쓰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일속산방은 다산선생이 황상에게 써 준 글속에서 전원생활에 관한 기획과 이상적인 사상이 잘 나타나있고, 그때 일속산방도는 치원(황상)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초의선사의 지도 아래 소치가 그렸을 것으로 짐작되며 스승의 뜻을 쫓아 대구면 항동 백적산 밑 일속산방에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집은 토지의 중앙의 남북으로 서넛 칸을 짓고 문은 순창 설화지를 바른다. 문 위는 당묵의 산수화를 붙이고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고목나무, 대나무, 바위 등을 그려서 시를 짓고 화제를 써서 붙인다. 방의 가운데에 책꽂이 두때를 놓고 1400여권의 책을 꽂는다. 책에는 주역집해, 모시소, 산내원위, 고서, 명화, 산경, 지지, 해와 달에 관한 성력, 법칙, 의약을 상세히 설명하여 뜻을 밝힌 전의, 싸우는 훈련의 질련, 제도, 조사의 필요한 자금, 법도 일정한 형식, 푸나무, 새나 물고기의 계보, 농정과 수리에 대한 학설 바둑이나 가야금 등의 계보를 갖춘다. 책상에는 논어를 두고 그 곁에는 자단나무로 만든 의자를 놓고 중국의 도연명, 사방득, 두보, 한유, 소식, 육우의 시와 악보를 갖추고 우리나라는 여러대의 임금들의 시집들을 갖추며 검은 구리로 만든 향로에는 아침과 저녁에는 옥류향을 피운다. 마당 앞에는 울타리 담을 세우고 담장안쪽은 온갖 알맞은 화분을 늘어놓는다. 석류, 치자, 만다라 등이 품격을 갖춘듯이 뽐내는데 국화가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러나 마흔 여덟 가지 명색이 있어야 완전한 것이다. 우측으로는 32자되게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붕어를 기르며 껍질하얀 대를 쪼개서 물통에 받치고 산속의 물을 끌어다가 담장 밑으로 흘러내여 채마밭으로 가게 한다.
조금 멀게는 오이와 감저를 심되 주위는 해당화 수 천주를 심어 울타리 되게 했다가 봄부터 여름까지 둘러 볼 때 짙은 향 내음이 코를 찌르게 한다. 마당의 왼쪽은 두 기둥에다 한 개의 가롯대 나무를 질러 만든 허술한 대문인 형문을 세우고 하얀 대 껍질로 엮어서는 사립짝도 세운다. 바깥으로는 산언덕 쪽에는 160자정도 걸어가서 바위틈새에다 새 풀로 덮은 누각인 초가를 한 칸 세운다.난간은 대나무로 만들고 그 주위에 무성한 나무와 가늘고 긴 대나무들을 베어내지 않는다. 시내를 따라서 320자쯤에 좋은 밭 수백이랑을 구입한다. 늦은 봄이면 논두렁에 나가서 모내기하는 들판을 구경하면 푸른색이 티끌과 흙먼지 없어 깨끗해 보인다. 뱃놀이는 활 쏠대 거리 서너 배쯤 떨어진 곳에다 둘레가 5~6리쯤 되게 큰 저수지를 막는다. 그 가운데에다 연꽃과 두발이나 세발등의 마름을 심으며 돛없는 배를 띄운다. 달밤이면 시를 잘 짓는 이나 글씨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배타고 나가 퉁소 불고 가야금을 타면서 서너 바퀴 돌다가 술에 취해 돌아온다. 세상살이의 이치에 어두워지면 저수지에서 3~4리쯤 떨어진 조그마한 절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참선한 스님이 일러주는 부처의 가르침을 배운다. 또 시를 짖고 술을 즐기기를 스님이 지키는 법률에 구애 받지 않고 틈나면 서로 오고가되 떠나고 머물기를 잊을 수만 있다면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한 낮의 차는 집 뒤에 용이 움켜잡고 싸우듯 하고 범이 후려 칠듯한 모습 을 한 다북 솔 몇 그루가 있다. 그 아래는 하얀 학 한 쌍이 서 있다. 그의 동쪽 밭을 일구어 인삼, 길경, 꼬시래기, 당귀 등을 심고 북쪽은 잠실 3칸을 짓고 잠박은 7층을 설치한다. 정오마다 차를 마시고 누에 키우는 곳으로 가서 아내가 차려오는 솔잎술 몇 잔을 마신다고 한다.
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 에 담겨진 사상은 다산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이 녹아있음을 그의 학문과 일생을 통해서 황상의 선비정신과 제자의 도리에 있다고 본다. ※참고문헌 : 소치실록 (김영호편저), 동문매반가 (양광식편저), 보정산방과이학래가 (양광식편저), 정‧황계첩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치허련200년(광주국립박물관) 글 : 신영호(강진군문화관광해설가) ![]() * '청자문화제 귀경기' http://waterpark.egloos.com/862941 ** 초의선사의 다산초당도 ![]() | |||||||||||||
다산(茶山)의 제자 황상과 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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