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약용)가 황상(黃裳)에게 문사(文史)를 공부할 것을 권했다. 황상은 머뭇머뭇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鈍] 것이요, 둘째는 막힌[滯] 것이며, 셋째는 어근버근한[戛알]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기억력이 뛰어난 것인데,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이 있다. 둘째, 글짓기가 날랜 것인데, 글이 가벼워지는 폐단이 있다. 셋째, 이해력이 빠른 것인데, 거칠게 되는 폐단이 있다.” “대저 둔한데도 뚫으면 그 구멍이 넓어지고, 막혔다가 트면 그 흐름이 왕성해지며, 어근버근한데도 갈고 다듬으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된다. 뚫는 것(천착)은 어떻게 하는가? 부지런히 해야 한다. 트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부지런히 해야 한다. 갈고 다듬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부지런히 해야 한다. 부지런히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당시 동천여사(東泉旅舍)에 머물고 있었다.
내(황상)가 이때 나이가 열다섯이었다. 어려서 관례도 치르지 않았었다.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감히 잃을까 염려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독서를 폐하고 쟁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
- 황상(黃裳, 1788-?), <임술기(壬戌記)>에서 -
‘우리 아이들,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제목으로, 다산 선생 생가 근처의 금남초등학교에서 학부모와 선생님을 상대로 말할 기회가 있었다. 먼저 위의 글을 전하고 제자 황상 이야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칭찬과 격려가 중요하다. 잘하면 바로 칭찬하고 장점을 찾아 북돋아줘야 한다. 어떤 칭찬과 격려는 평생 간다. 그런데 우리 문화가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칭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가릴 것이 없다. 남의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내 아이에게도 교육적 효과가 있다.
시골 아이 15살에 다산 선생을 만나 얻은 가르침이 황상의 일생을 결정했다. 다산과 제자 황상의 만남,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위 글도 거듭 새길 만하지만, 더 많은 얘기를 듣고자 하는 분은 직접 <실용적 다산읽기>에 실린 정민 교수의 글(9-1. 성의병심법(誠意秉心法))을 일독해보시길 권한다.
글쓴이/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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