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2010 부산일보신춘문예 시조당선작] ㅡ해토머리 강가에서 /김환수

문근영 2010. 1. 3. 10:37

[2010 신춘문예-시조] 해토머리 강가에서
/ 김환수

갯버들 가장귀에 물구나무선 눈먼 햇살 

풋잠 든 하얀 잎눈 이따금 들여다본다.

도톰한 봄의 실핏줄, 돋을새김 불거지고.



물비늘 풀어헤친 낯익은 수면 위로

명지바람 건듯 일어 빗살무늬 그려내고

웅크린 이른 봄날을 종종걸음 재우친다.



귓가에 기웃거리는 자갈밭 여울물 소리

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

산그늘 조금씩 끌어당겨 정수리를 덮고 있다.



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

딱지 앉은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

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





[당선소감] 자그마한 꽃대 하나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가 살을 에는 늦은 오후에 한 통의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학양식인, 전통과 조화를 이룬 현대시조가 3장 6구 정형의 틀 속에 언어의 압축미를 통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시조와 함께한 지난 4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 관한 작품을 써놓고 직접 현장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던 일, 여름날 산과 들로 나가 여우비 맞던 일, 박물관에 들러 유물을 관찰하던 일 등등 시조가 내 몸속에 자리 잡고 자그마한 꽃대 하나를 물어 올리고 있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지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무척 납니다. 3년 반의 투병 생활을 하면서 힘든 모습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몸을 낮춰 행동하라고 늘 당신보다 자식 걱정만 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큰 소리로 부르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설익은 작품을 뽑아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 저에게 시조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윤금초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께 영광을 돌리고 싶고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님과 말없이 지켜봐준 가족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김환수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에스엘㈜ 근무.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심사평] '언어예술' 원론적 명제 충실

우리 모국어가 시조의 형식미학의 천착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정제되기를 바라면서 금년도 부일
정해송 시인
신춘문예 심사에 임했다.

올해의 응모작 350여 편을 꼼꼼하게 다 읽고 난 후 네 편을 뽑아들었다. '매화'(이성배), '새우'(서상규),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김봉집), '해토머리 강가에서'(김진우)가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다. '새우'는 착상과 상상력의 전개가 이채롭다. 새우가 지닌 C자형의 모양과 웅크린 노숙자의 잠자는 자세에서 유사성을 찾아 현실문제를 부각시킨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시의 메시지가 좀더 명료한 이미지로 직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조시인이 될 것 같다. '매화'의 작가는 시적 감수성은 뛰어나지만 아직 표현의 미숙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매화는 겨울의 뼈로 녹여 만든 꽃망울'과 같은 이미지는 그의 시적 재능을 가늠케 한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경합한 작품이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와 '해토머리 강가에서'이다.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는 선이 굵고, 깊은 사유와 정신의 기개를 느끼게 하며 시적 에너지가 충일한 반면, '해토머리 강가에서'는 보다 섬세한 감성으로 언어미감에 충실하며 이미지의 조형이 탁월했다.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원론적 명제에 성실하게 맥이 닿아 있다. 다시 말해 주제의식의 예술적 형상화가 시조의 그릇에 넘치지 않도록 축조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부산일보 | 25면 | 입력시간: 2010-01-01 [16:4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