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의 시와 함께]
가을의 하늘이 또 저만큼 높아졌구나/고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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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있다 약간 언덕의 흉내를 내고 있는 길, 길가의 벤치 백양나무군 전화 부스 그리고 짤막한 숲과 이런 곳을 찾은 사람들의 유자(有自)한 오늘
자판기에서 커피가 아닌 동전이 오히려 굴러 떨어진다 오래된 자판기 저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절이 왔어 아 사는 게 죄라고 탄식 일삼는 동안 가을의 하늘은 또 저만큼 높아졌구나
뒤숭숭한 시절이다. 날뛰던 유가가 잠잠해지니 환율이 뛴다(말도 아니면서). 주가가 바닥을 치고 집값도 내려앉는다(희망도 사라진다).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가고 때 이른 낙엽은 밟혀 바스러진다.
모든 게 뒤죽박죽인 이런 세상에는 불어오는 바람에도 하필이면 ‘번데기 냄새’가 난다. 숲은 ‘짤막’하고, 길도 ‘약간 언덕의 흉내’를 낸다. 사람들은 손바닥 뒤집듯 자유를 뒤집어 ‘유자(有自)’하게 하루를 보낸다.
오래된 자판기처럼 유용의 세계에서 축출된 사람들(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날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죄가 되는 고달픈 사람들. 문득 바라보면 하, 가을 하늘은 또 저만큼 높아져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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