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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여기 다지기 좀 주세요~!]
벌써 경칩이네요. 개구리가 나오다가 하얀 눈을 보고 다시 들어가버리지나 않을지...
어제는 싱그러운 봄을 맞아 입맛을 돋우고자(돋구고자가 아닌 이유는 아시죠?) 도가니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소 무릎의 종지뼈와 거기에 붙은 고깃덩이로 탕을 끓인 게 도가니탕인데요. 하얀 국물이 일품이죠.
도가니탕을 먹을 때는 밑반찬이 많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깍두기 하나면 되죠. 그러나 그 옆에 꼭 ‘다진 양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진 양념을 지금도 ‘다대기’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다대기’는 일본에서 온 말입니다. 일본 양념의 하나로 끓는 간장이나 소금물에 마늘, 생강 따위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끓인 다음, 기름을 쳐서 볶은 것으로, 얼큰한 맛을 낼 때 씁니다. 이 ‘다대기’를 국립국어원에서 ‘다짐’, ‘다진 양념’으로 바꿔 쓰도록 한 적이 있는데요. 이것도 좀 이상합니다. ‘다짐’은 “누르거나 밟거나 쳐서 단단하게 하다”라는 뜻의 ‘다지다’의 명사형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마음이나 뜻을 굳게 가다듬어 정함”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어투 말을 다듬을 때는 좀더 많이 고민을 해야 하는데...
일본에서 온 ‘다대기’에 해당하는 좋은 우리말이 버젓이 있습니다. ‘다지기’가 바로 그겁니다. “고기, 채소, 양념감 따위를 여러 번 칼질하여 잘게 만드는 일”을 말하기도 하고, “파, 고추, 마늘 따위를 함께 섞어 다진 양념”을 말하기도 합니다. ‘설렁탕에 다지기를 풀다.’처럼 활용하면 되죠.
좋은 우리말을 두고 왜 억지로 순화용어를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일본말 다대기를 대신할 말을 찾으면서, 순 우리말인 ‘다지기’를 버리고 ‘다짐’, ‘다진 양념’을 쓰라고 하는 멍청한 짓이 어디 있을까요?
근데 그런 게 또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로 오른편에 비상 차량이 달리는 길이 있죠? 그 길을 뭐라고 하죠? 일본에서는 ‘노견(路肩, ろかた[로가따])’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road shoulder’죠. 길 어깨라는 뜻으로... 이것을 우리말로 바꾼답시고 국어학자들이 ‘어깨 길’로 만들었어요. 이런 환장할 일이 있나! 순 우리말 ‘갓길’이 있는데, 이런 것은 버리고 일본말을 그대로 번역한 ‘어깨 길’이라뇨?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국어학자들 아직 멀었습니다.
짧은 제 생각이지만, 학문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어학자 아닌 국어학자 할아비라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존경받을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글을 망치는 장본인으로 낙인찍힐 겁니다. 글을 쓰다 보니 좀 격해졌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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