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제09회]
수도자가 사는 집
선정 삼매禪定三昧가 충만하길 빕니다. 건성으로 앉아 있지 말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낱낱이 살펴보십시오.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고 순간순간 기쁨이 배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정진은 의무적인 행위가 아니라 침묵 속에 떠오르는 삶의 향기입니다. 중심이 잡히면 말이 필요없게 됩니다. 즐겁게 정진하는 것이 안거安倨입니다. (여여선당如如禪堂에 보낸 편지에서)
§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이런 법문이 있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끝없는 중생을 건지려고 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출가 정신이다.
§ 인도의 위대한 시인 까비르는 이렇게 노래한다. '너는 왔다가 가는 한 사람의 나그네, 재산을 모으고 부를 자랑하지만 떠날 때는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한다. 너는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는 손바닥을 펴고 간다.'
§ 우리가 불행한 것은 물질적인 결핍이라든가 신체적인 장애 때문이 아니다. 행복할 수 있는,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새로 핀 꽃을 보고 그 꽃에 매료당하는 것은 가슴의 영역이지 머리의 영역이 아니다. 생명의 신비는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또 가슴에서 온다. 삶의 부피나 덩이만 생각하고 삶의 질을 놓쳐버리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 명상을 왜 하는가.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선가귀감>은 말하고 있다.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일이다.' 이것을 깊이 새겨둬야 한다. 무엇인가 인위적으로, 억지로 바른 법을 찾느라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바른 법에서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한 경전은 말하고 있다. '중생의 마음을 버리려고 할 것 없이 다만 제 성품을 더럽히지 말라.' 억지로 바른 법을 찾으려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바르지 못한 일이다. 오히려 진실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따로 부처를 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얻어지는 게 아니다. 본래 청정한 마음, 진실한 마음을 지키는 것, 이것이 최고의 정진이다. 정진이라는 것이 밤잠을 안 자고 탐구하는 그것이 아니고, 본래 청정한 그 마음을 지키는 것, 본래 때묻지 않은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서산대사는 말하고 있다.
§ 명상은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사물의 실상을 조용히 지켜보고 내 내면의 흐름을, 내 생각의 실상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안팎으로 지켜보는 일이다. 보리달마는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살피는 이 한 가지 일이 모든 현상을 거둬들인다.'는 뜻이다.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이것을 일과 삼아서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최초의 한 생각에서 싹튼다. 이 최초의 한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 까비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말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라.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팎으로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라.' 안으로 살피라는 소리이다.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라,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밖으로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라, 그 아름다움을 묵묵히 지켜보라는 뜻이다.
§ 진정으로 세상을 살 줄 아는 사람은 한 해가 지나간다고 해서 더 늙지 않는다. 수행자는 그런 덧없는 세월을 한탄할 게 아니라 그 세월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덧없이 살고 있는가, 무가치하게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나는 설이 되면, 해가 바뀌면 늘 그렇게 생각한다. 과연 내가 한 해 동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만큼 잘 썼는가. 그것이 과제처럼 내 앞에 다가온다. 어떤 때는 고맙게 여길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후회스러워질 때도 있지만, 늘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맞는다.
§ 출가자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출가했고, 어떤 것이 진정한 출가자의 본분이고 삶의 태도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백 오십 가지 계율을 낱낱이 챙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생활 자체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도 늘 그것을 반성하고 있지만, 진정한 출가 정신을 가지려면 가난해야 한다. 옛 수도자들은 다 가난했다. 풍족한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다. 모든 것이 풍부한 이런 세상에 수도자들이 살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풍요로운 물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하나의 과제다. 그러므로 출가자는, 수도자는 우선 가난해야 한다. 가난이 기본이다. 가난해야 그 속에서 진정한 수행이 이루어지고 그 정신이 맑아진다.
§ 옛 수행자들의 덕이란 무엇인가. 청빈의 덕이다. 청빈의 덕을 우리가 몸과 마음에 익힐 때 수행자의 대열에 들 수 있는 것이지, 머리만 깎고 먹물 옷만 입었다고 해서 불제자라고 할 수는 없다.
§ 절 집안은 청정이 생명이다. 청정이란 오염되지 않은 본래 순수한 그런 상태를 말한다. 무엇보다 청정성의 회복이 가장 시급하다.
§ 수도자가 세상의 흐름에 대해 너무 어두워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세상 흐름에 편승하는 것도 수도자답지 않다. 개인의 능력이나 희망에 따라 새로운 정보에 대한 지식들을 갖추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래야 사회를 알고, 그 사회를 바르게 이끌 테니까. 그러나 내 개인적인 바람은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처럼 좀 고색창연한 그런 수도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이 닳아빠진 현대 사회에 큰 기여가 될 것이다. 어설프게 현대화의 물결에 편승해서 마치 수도자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양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거기서 무엇이 얻어지겠는가.
§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불철주야 외곬으로 파고드는 그런 수행자 역시 소중하다. 왜냐하면 그도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세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마음의 수양을 하고 개인의 수행을 한다는 것도 결국은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만 멈추라는 것은 아니다.
§ 맑은 영혼이 빠져 나간 얼굴, 그것은 빈 껍질이다. 혼이 없는 얼굴은 빈 껍질이다. 숨쉬는 시체에 불과하다. 맑은 영혼이 깃들지 않은 미모는 마치 반짝이는 유리로 해박은 눈과 같다. 유리로 어떻게 사물을 식별하고 감상할 수 있는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려면 영혼을 맑고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 얼굴이란 무엇인가. 얼의 꼴이라는 뜻이다. '얼'을 아름답게 가꾸면 그 꼴인 얼굴은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 나는 이틀이든 사흘이든 집을 비우고 나올 때는 휴지통을 늘 비워 버린다. 거기에 거창한 비밀이 있어서가 아니고 끄적거리다 남은 종이쪽이거나 휴지조각 같은 것들인데 일단 불에 태워 버리고 나온다. 내가 집을 떠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할 때 남긴 물건들의 추한꼴을 남한테 보이기 싫어서다. 그래서 그때그때 정리해 치운다. 이제 곧 가을이고 조금 있으면 나무들이 잎을 다 떨어뜨린다. 계절의 변화를 보고 '아, 세상이 덧없구나. 벌써 가을이구나. 어느덧 한 해도 두 달밖에 안 남았네.' 하고 한탄하지 말라.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 눈에 보이는 낙엽이나 열매들이 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비본질적인 것, 불필요한 것은 아깝지만 다 버려야 한다. 그래야 홀가분해진다. 나뭇잎을 떨어뜨려야 내년에 새 잎을 피울 수 있다. 나무가 그대로 묵은 잎을 달고 있다면 새 잎도 피어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순간 어떤 생각, 불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새로워지고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렇지 않으면 고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사람이다. 맨날 그 사람, 똑같은 빛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 어떤 틀에 박혀 벗어날 줄 모르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 낡은 것으로부터, 묵은 것으로부터, 비본질적인 것으로부터 거듭거듭 털어 버리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 수도자는 앉는 자세가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늘 허리를 바짝 펴야 한다. 허리를 바짝 펴면 정신이 가장 맑아진다. 허리가 삐닥하면 정신이 죽어 있는 것이다. 남의 흉을 보는 사람은 허리가 삐딱해진다는 말이 있다. 허리를 바짝 펴면 남 흉볼 여력이 없다. 허리를 바짝 펴면 눈이 저절로 자기 코끝으로 온다. 자기 허물만 살피는 것이지 남의 허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 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안정된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
§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 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모두가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순간순간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녹스는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더러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단순해지고 순수해진다. 이때 명상의 문이 열린다.
§ 홀로 있으려면 최소한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홀로 있으면 외롭다고 해서 뭔가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자기 영혼의 투명성이 고이려다가 사라져 버린다. 홀로 있지 못하면 삶의 전체적인 리듬을 잃는다. 홀로 조용히 사유하는,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그런 시간이 없다면 전체적인 삶의 리듬 같은 것이 사라진다. 삶의 탄력을 잃게 된다.
§ 명상은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이다. 안으로 충만해지려면 맑고 투명한 자신의 내면을 무심히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명상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훈련이다. 명상은 절에서, 선방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서 겹겹으로 둘러싸인, 겹겹으로 얽혀 있는 내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서 무심히 주시하는 일이다.
§ 연꽃은 아침 일찍 봐야 한다. 오후가 되면 벌서 혼이 나가 버린다. 연꽃이 피어날 때의 향기는 다른 꽃에선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그리고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그것은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다. 또는 비 오는 날 이렇게 우산을 받고 연못가를 배회하고 있으면 후둑후둑 연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명상은 바로 마음을 열고 '연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일과 같다.
§ 사랑이 우리 가슴 속에서 싹트는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진정한 탄생이고 부활이다. 사랑이 우리 가슴 속에서 태어나는 순간, 다시 말해 겹겹으로 닫혔던 우리 마음이 활짝 열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 사랑과 거듭남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 법정의 오두막 편지 중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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