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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그게 희귀병이라고요?]
어제 제가 걸린 병을 여쭤봤더니 많은 분이 걱정(?)을 해 주시네요. 그 병은 쉽게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이라는 분도 계시고, 희귀병이니 잘 지키라는 분도 계시고... 오늘도 이어서 병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SBS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장애와 희귀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아와 가난 때문에 아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정에 그들에게 필요한 전문가 그룹을 연계하여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게 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입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게 '희귀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자에게 '희귀병'이라고 하면 그건 환자를 우롱하는 겁니다. '희귀'는 드물 희(稀) 자에 귀할 귀(貴) 자를 써서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뜻입니다.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표 같은 게 희귀한 것이죠. 그럴 때 쓰는 낱말인 '희귀'를 써서 '희귀병'이라고 하면,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이라는 낱말이 돼버립니다. 아무리 귀하기로서니 병까지 귀하겠어요?
백 보 천 보 양보해서 의사가 연구목적으로 세상에 별로 없는 어떤 병을 찾는다면 그건 희귀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치료약도 없고 치료방법도 모르는 병에 걸린 사람에게 희귀병에 걸렸다고 하면 그게 아픈 사람을 우롱하고 조롱하고 비꼬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굳이 그런 낱말을 만들고 싶으면 '희소병'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희소'는 드물 희(稀) 자에 적을 소(少) 자를 써서 "매우 드물고 적음"이라는 뜻이므로 '희소병'은 말이 되죠.
보건복지부는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업일 겁니다. http://mohw.news.go.kr/warp/webapp/news/view?section_id=p_sec_1&id=536d652ac00172df016ecb7
바로 이런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국가기관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희귀병이라뇨... 그렇지 않아도 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별로 없는 귀한 병"을 가졌다고요? 그렇게 귀한 병이라면 힘없는 국민은 안 가져도 좋으니 보건복지부나 많이 가져가시죠. 희귀병은 보건복지부에서 다 가져가시고, 우리 국민에게는 '희소·난치성질환'이 아니라 '드물고 낫기 어려운 병' 치료나 많이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 : 성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