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무소유 10 종점에서 조명을

문근영 2009. 4. 16. 07:53

법정스님의 모습

종점에서 조명을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여기에는 자기 성찰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부침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일상인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지겹고 답답해 숨막힐 일이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헛눈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혹은 한강 인도교의 비어 꼭대기에 올라가 뉴스거리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되돌아오고 만다.

자기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불쑥 망우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짓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생을 죽음 쪽에서 조명해 주고 싶어서였다. 여지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망우리!

과연 이 동네에서는 무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누워 있는 것일까. 우뚝우뚝 차갑게 지켜서 있는 그 비석들만 아니라면 정말 지극히 평온할 것 같았다. 죽어본 그들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을 깊은 잠에서 불러 깨운다면 그들은 되찾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사형수에게는 일분 일초가 생명 그 자체로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낙조 같은 걸 느낄 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 깊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깊어짐 없는 범속한 되풀이만이라면 두 자리 반으로 족한 "듣기 좋은 노래"가 되고 말 것이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해서.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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