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 오늘의 특선 요리 외 2편
오늘의 특선 요리 (외 2편)
김기택
높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독수리 날개의 넓고 튼튼한 부력만을 골라 냉장 숙성시킨 후에 구웠습니다.
하루 중 가장 차갑고 맑은 시간에 터져 나오는 새벽닭의 힘찬 울음만을 엄선하여 바삭바삭하게 튀겼습니다.
시속 111킬로미터로 달리는 치타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탄력만 가려내 담백하게 고았습니다.
발톱과 이빨이 간지러워 우는 고양이의 갓난아기 울음에서 애절한 눈빛만 솎아내 고소하게 볶았습니다.
수천 미터 밖 물살의 힘과 방향을 읽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푹 끓여 고감도 감각만을 진하게 우려냈습니다.
두근거리는 토끼의 심장에서 연한 놀람과 어린 두려움을 떨림이 살아 있는 그대로 발라내 갖은 양념에 무쳤습니다.
주인을 향해 막무가내로 흔들어대는 개 꼬리에서 명랑하게 들뛰는 유전자만을 갈아 즙을 냈습니다.
씹지 않아도 녹아서 핏줄로 전율하며 스며드는 육질과 육즙의 싱싱한 발버둥만을 양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재활용
지하상가 입구 한구석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아무도 치우려 하지 않는다.
지나가던 캔과 담배꽁초와 가래침만 더 쌓인다.
파리 모기가 냄새에 미쳐 앵앵거린다.
발들이 멀찌감치 돌아간다.
하는 수 없이 쓰레기가 꿈틀거리더니
구겨진 넝마 조각과 휴지 들이
서로 끌어안고 스스로 팔다리가 되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자신을 재활용하러 또 어딘가로 떠난다.
이미 폐품이 되어버린 고물 덩어리를
제 몸으로 사용하기.
쓰레기로 숨 쉬기.
마지못해 밥을 씹어 그 쓰레기를 꿈지럭거리게 하기.
눕자마자 바로 쓰레기 더미가 되기.
모든 쓰레기들의 잠을 깨우며
새벽 수거차가 온다.
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만 수거하고 간다.
지하상가 입구 한구석에 여전히 쓰레기가 쌓여 있다.
최선을 다해 더려워져도 아무도 치워가지 않는 노숙자가 누워 있다.
키스
처음 네 입술이 열리고 내 혀가 네 입에 달리는 순간
혀만 남고 내 몸이 다 녹아버리는 순간
내 안에 들어온 혀가 식도를 지나 발가락 끝에 닿는 순간
열 개의 발가락이 한꺼번에 발기하는 순간
눈 달린 촉감이 살갗에 오톨도톨 돋아 오르는 순간
여태껏 내 안에 두고도 몰랐던 살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
뜨거움과 질척거림과 스며듦이 나의 전부인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갗으로 덮여 있는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이 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순간
네가 나의 심장으로 펄떡펄떡 뛰는 순간
내가 너의 허파로 숨 쉬는 순간
내 배 안에서 네가 발길질을 하는 순간
아직 다 태어나지 못한 내가 조금 더 태어나는 순간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