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시 다산을 배웁시다 / 박석무

문근영 2018. 8. 13. 01:47



 

 

다시 다산을 배웁시다


기축(己丑)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가 이렇게 빨리 가고 마는가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오는 새해에는 정말로 좋은 세상이 오고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희망이라도 있기에 새해를 맞는 기쁨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금년은 그렇지도 않아 더욱 가슴이 답답합니다. 새해에 대한 꿈이나 희망보다는 고난과 위기가 엄습하리라는 억측만 무성하여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떤 이유일까요.

그렇다 해도 우리 다산연구소와 함께 ‘다산 운동’에 동참하고 계시는 여러 독자분들, 마음과 가슴을 활짝 열고 새해를 맞는 희망과 꿈도 지녀보고, 묵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논리를 찾으며 새해에 많은 복 받으시기를 기원해드립니다. 사단법인 다산연구소가 문을 연지 벌써 만5년에 가까워지며 햇수로는 6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면서 출발한 연구소,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여러 고급 필자들이 주장한 높은 경륜과 식견의 이야기들은 말할 것 없이, 제가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도 벌써 550회를 훌쩍 넘었습니다. 200년 전의 다산선생 저서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내 오늘의 세상살이와 접목시켜 우리가 가야할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나름대로는 열과 성을 다해 쉬지 않고 계속해보았습니다.

그런 결과로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글을 보내주어 잘 읽고 있다는 격려를 받을 때는 많아도, 아직 다산을 통한 깨끗한 세상 만들기와, 살만한 세상 만들기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다시 한 번 다산을 읽으며 배우고 몸소 행하기를 바라자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와 금융의 위기를 맞아 서민들의 삶이 고달프기 그지없고, 변화와 개혁을 표방하면서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적 성과들이 뒷걸음치려는 위기에 봉착한 느낌이 듭니다. 정부수립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겨우겨우 얻어낸 헌법적 권리이자 인간의 기본권인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으리라는 불안을 떨구지 못하는 형편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전제군주제이던 조선왕조, 그런 엄혹한 시절에 다산은 작은 고을의 통치자인 목민관이 되어 재판권을 행사하면서, “통치자가 밝은 정치를 펴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제 몸의 편안함만 꾀하느라 백성들을 괴롭히는 통치자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官所以不明者 民工於謀身 不以 犯官也)라는 판결이유를 밝히고, “시위를 주동하여 통치자의 잘못을 일깨워 준 그대 같은 사람은 통치자가 천금(千金)을 주고라도 사야할 사람이지 처벌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하면서 무죄석방한 사실이 있습니다. 백성 천여명을 이끌고 관아에 쳐들어가 항의해 실정법을 위반하여 5영에 수배령이 내려진 이계심이라는 시위주동자를 석방한 지혜를 오늘 우리가 배우지 않고 누가 배워야 하겠습니까.

다산은 젊은 시절, 암행어사로서 참담한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실태를 파악하고난 뒤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 ‘국법을 존엄하게 지켜 민생을 중하게 여겨야 합니다’(以尊國法 以重民生)라는 통치원리를 건의하였습니다. 민의가 제대로 전달되고 여론이 제대로 수렴될 수 있는 언로(言路)가 열려야 한다는 헌법적 권리는 바로 언론의 자유이고, 국민의 자유로운 집회와 시위가 보장되는 헌법적 권리를 지키는 일도 헌법에 보장된 국법을 존엄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이런 자유와 권리가 보장될 때 백성의 삶이 중하게 여겨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떤 방법이 민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길이겠습니까.

국법인 헌법이 엄격하게 존중되어 법률을 통해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 없어야 국법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국법을 존중하지 않고서 어떻게 민생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선후가 있을 수 없이 국법과 민생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야할 길입니다. 다른 모든 논리야 접어두고라도, 최소한 새해에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받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헌법이 존중되어 민생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다산의 말씀을 배워서 실행하는 한해가 되면 어떨까요. 새해 아침에 올리는 간절한 충정입니다.

새해 아침에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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