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재 소(한문학자)
중국 감숙성(甘肅省)에 주천(酒泉)이란 곳이 있다. 그 고을의 물맛이 술과 같다고 하여 한(漢)나라 때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문자 그대로 ‘술이 솟아나는 우물’의 고장이니 예로부터 천하의 술꾼들이 동경해 마지않던 곳이다. 두보(杜甫)의 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는 당시 8명의 주선(酒仙)을 읊은 작품인데 그 중에
여양(汝陽)은 술 세 말 마시고야 조정에 드는데 汝陽三斗始朝天 가는 길에 누룩 수레 만나면 침을 흘리고 道逢麴車口流涎 주천(酒泉) 태수 되지 못함을 한탄한다네 恨不移封向酒泉
라는 구절이 있어, 여양왕 이진(李璡)이 주천의 태수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제 2수에도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야 天若不愛酒 하늘엔 주성(酒星)이 없었을 것이고 酒星不在天 대지(大地)가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야 地若不愛酒 땅엔 응당 주천(酒泉)이 없었을 것이라 地應無酒泉
하여 하늘과 땅도 술을 사랑했으니 자기가 술 마시는 것이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 했다. 아마 이백은 주천에 살면서 좋아하는 술을 실컷 마시며 달과 더불어 살고 싶었을 것이다. 실로 이백은 술과 달의 시인이었다. 그는 인간세상에서 느낀 환멸과 좌절을 술로 달래었고 추악한 현실 너머에 있는 달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이백의 시에 술이 등장하면 으레 달이 따라 나온다. 말하자면 이백과 술과 달은 삼위일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과 달의 시인 이백이 살고 싶었던 곳 이 주천에 최근 ‘우주경제특구’란 명칭이 붙여졌다. ‘주천’과 ‘우주경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2003년 유인 우주선 신주(神舟) 5호와 2005년의 신주 6호에 이어 금년 9월에 신주 7호가 주천 근처의 위성발사센터에서 발사된 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우주경제특구로 발 돋음 한 것이다.
그러나 ‘주천’과 ‘우주경제’를 약간은 어울리게 만든 일이 있었다. 2007년에 달 탐사위성인 항아(嫦娥) 1호가 주천에서 발사되었기 때문이다. ‘항아’는 달의 별칭이다. 전설에 의하면 항아의 남편 예(
)가 곤륜산의 서왕모(西王母)로부터 불사약을 얻어왔는데, 둘이서 함께 먹어야 할 불사약을 항아가 혼자 몰래 훔쳐 먹었다. 몸이 가벼워진 항아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죄책감 때문에 달 속에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 후 항아는 달에서 홀로 사는 여인이 되었고 수많은 시인들에 의하여 달은 항아로 불리게 되었다.
이백과 주천과 술과 달을 떠올리면, 주천에서 달 탐사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달 탐사위성의 이름을 ‘항아’로 명명해서 그 어색함을 좀 더 풀어준다. 우주선 발사기지에 우주경제특구라는 이름을 붙인 중국인의 상술(商術)도 놀랍지만 달 탐사위성을 ‘항아(嫦娥)’로 명명한 중국인의 예지가 더욱 놀랍다. 유인우주선을 ‘신의 배’라는 뜻의 ‘神舟’라 이름하고 달 탐사위성에 ‘嫦娥’라는 이름을 붙이며, 신주 7호 발사 후 중국 CCTV가 “神舟問天”(신의 배, 하늘에 묻다)이라는 타이틀로 방송을 한 것은 한자가 가진 독특한 특성에 힘입은 바 크다는 생각도 해본다.
“봄 가을 흰 토끼는 불사약을 찧고 있고 / 홀로 사는 항아는 누구와 이웃할까”(「把酒問月」)라고 노래했던 이백이 주천의 항아 1호 발사 현장에 있었다면 그 감회가 과연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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