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Pino Daeni 의 여인들 /Italian "Spirit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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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과 문장가
의원에게 약초가 있다면 문장가에는 문자가 있다. 옛날의 의원은 약초 뿌리 하나 마다 그 성질을 따져서 그 병에 맞게 썼다. 후세에는 이루어진 처방만을 고집하여 통째로 쓴다. 그래서 의술이 낮아지게 되었다.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들은 글자마다 그 뜻을 헤아려 이치에 맞게 썼다. 하지만 후세에는 만들어진 구절을 외워다가 그대로 표절한다. 그래서 글이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몽학의휘서(蒙學義彙序)〉 6-93
醫家之有藥草, 猶文家之有文字. 古之爲醫者, 根根而辨其性, 則用中其病. 後世執成方而投其全, 醫之術以汚. 古之爲文者, 字字而辨其旨, 則使中其理. 後世誦成句而勡其全, 文莫猶古也.
의원은 약초를 가지고 처방을 내리고, 문장가는 문자를 얽어서 글을 짠다. 약초 하나하나의 성질이 서로 보완해주고 상승작용을 해서 질병을 고친다. 글자 하나하나가 주제를 향해 집약되고, 유기적 통일성을 갖출 때 비로소 설득력 있는 한편의 글이 탄생한다. 좋은 의원은 약재 하나마다 그 성질을 꿰뚫고, 훌륭한 문장가는 낱글자의 쓰임새를 장악하여 그때마다 최선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병의 정도가 다르니 이미 만들어진 처방만 고집하다가는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자칫 사람을 잡는 수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가의 좋은 글이라도 내 글 속에 들어오면 어색하고 추하고 볼 성 사납게 되어, 내 글을 외려 망친다. 그러니 털도 안 뽑고 통째로 삼킬 생각 말고, 되씹고 곱씹어서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어야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글쓰기에는 미묘한 저울질이 있어야 한다.
정리:DaumCafe 이보세상
원본글: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