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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7회 이형기 문학상에 오정국 시인 선정

문근영 2018. 6. 14. 19:10

제7회 이형기 문학상에 오정국 시인 선정

— 수상작은 시집 『파묻힌 얼굴』

 

 

 

   진주시는 오는 6월 1일부터 3일까지 〈제5회 이형기 문학제〉를 칠암동 문화거리, 진주성, 진양호 일대 그리고 진주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개최한다. '낙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이형기는 진주 출신으로 16세 때 제1회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 백일장 장원을 하였으며 그 이듬해《문예》지로 등단한 뒤, 20C 후반 한국 시인들 가운데서 시를 소재로 삶과 인간문제를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일곱 번째 시상하는 이형기 문학상에는 오정국 시인이 선정되었으며 수상시집은『파묻힌 얼굴』이다.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는 2011년도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시집 70여권을 심의하여 1차 25권 선정, 2차 10권 선정 그리고 본심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시상식은 6월 2일(토) 오후 4시 20분 진주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열리며 시상금 2천만원과 상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 회장이며 경상대학교 명예교수인 강희근 교수를 비롯한 원구식(현대시 발행인), 박주택(경희대 교수), 송희복(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오형엽(수원대 교수)으로 구성된 본심 심사위원회는 심사평에서 오정국 시인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을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고 보면서 그것은 진흙에서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어디를 가도 본원이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므로 오시인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냉철한 투시력으로 시를 쓰는 드문 시인이라고 그 우수성을 평가하였다.

  수상자 오정국 시인은 1956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 시인은 198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내가 밀어낸 물결』,『멀리서 오는 것들』과 평론집『시의 탄생, 설화의 재생』,『비극적 서사의 서정적 풍경』을 펴냈고, 《서울신문》기자와《문화일보》문화부장을 거쳐 현재는 한서대 인문사회학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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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들 (외 2편)

—골목의 입구

 

   오정국

 

 

 

1

몸이 근질근질하여 땅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진흙들

 

손바닥으로 눌러서는 죽지 않는

진흙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진흙들

 

내 팔에 안기고 다리에 붙어서 어디론가 그렇게 흘러가고 싶었던 진흙들

 

누가 손짓하여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이쪽으로 밀려오는 진흙들

 

무너지고 나서야

땅바닥에 닿는 진흙들

 

2

골목 끝의 배나무가 이제 좀 조용해졌다 바람 끊긴

먹먹한 저녁, 홍역 앓듯 열에 들떠 들썩거리는

짐승, 진흙들

 

3

이런, 나더러 어쩌라고, 내 눈에 들켜서 어쩔 줄 모르는

진흙 덩어리, 흠뻑 젖은

빛의 범벅들

 

내 등 뒤에서 암약하던

밤의 수렁들, 땅 밑의 물길을 따라

야차(夜叉)처럼 흘러다니던

밤의 짚신벌레들

 

 

 

진흙들

—도굴의 발자국

 

 

 

4

진흙들, 가뭄으로 배곯다가 소낙비 오면

번갯불을 받아먹고 온몸이 저릿저릿하도록 황홀하였다

 

노름으로 패가망신한 사내가 여기에 발자국을 깊숙이 묻어두고 갔다

다시는 이쪽 세상으로 오지 않겠다고, 그런데

 

어디서 또 이런 진흙 덩어리, 내 옆구리에 달라붙는

 

진흙들, 자식을 사막의 전쟁터로 보낸 어머니마냥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내장의

긴 탯줄들

 

헐벗은 노숙의 꿈틀대는 등허리들

 

5

진흙은

여태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장미 문신을 가졌다

 

진흙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도굴의 발자국을 지녔다 여기에 머물다 간

우묵한 눈빛들, 목을 매달듯

내 구두 밑창에 달라붙어

칼로 긁어내도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들

불길한 점괘들

묵과할 수 없는 침묵들

 

6

살구나무에 안기는 봄날을 어찌할 수 없어서

진흙은 차라리 제가 무르녹기로 하였다

 

단 한 번 그렇게 굴복하였다

 

7

내 이렇게 몸을 구부리고 구부리지만

끝끝내 굴복하지 않는

진흙의 적빈(赤貧), 무릎 꿇지 않는

적신(赤身)의

흙덩어리들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매미가 허물을 벗는, 점액질의 시간을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갗이 찢어지고 벗겨지는 순간, 그 날개에 번갯불의 섬광이 새겨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생살 긁히듯 뜯기듯, 끈끈하고 미끄럽게, 몸이 몸을 뚫고 나와,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를 살려내는,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도 죽이는, 여기에 고요히 내 숨결을 얹어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시집 『파묻힌 얼굴』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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