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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화 다양성과 방언 / 남 영 신

문근영 2018. 5. 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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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다양성과 방언


                                                  남 영 신(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

2001년 파리에서 열린 제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다양한 문화가 인류의 공동 유산이며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인권을 보장하는 기초이므로 인류는 문화 다원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 다원주의의 바탕은 모어(母語)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모든 이는 자신이 선택한 언어로, 특히 모어로 자기 작품을 창조하고 배포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문화 다양성을 전적으로 존중하도록 질 좋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어떤 심리적 억압도 받지 않고 모어를 이용해서 문화 창조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서 이를 ‘문화권(文化權)’의 내용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는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서 수많은 소수 민족 내지 원주민의 언어가 사라짐으로써 이들의 언어가 가진 문화와 사상을 접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서 어찌 보면 제국주의자들의 배부른 반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반성을 하게 된 것만이라도 고맙고 반갑다.

넓게 보면 국가 사이에서 지배 언어와 피지배 언어 간의 먹고 먹힘이 인류의 언어 유산을 파괴하고 있지만, 좁게 보면 국가 안에서 표준어와 방언 사이의 먹고 먹힘이 한 겨레의 언어 유산을 파괴한다. 언어 파괴에 관한 한 피지배 언어의 죽음이나 방언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에 몸을 담그기 위해서 영어를 공통어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나 국민 통합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표준어로 민족어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다르지 않다. 전자는 영어를 지상의 언어로 생각하여 모어를 버릴 준비를 하고 있고, 후자는 표준어를 지상의 언어로 생각하여 방언의 목을 조이려 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선언에 언급된 “자신이 선택한 모어”란 다름 아닌 원주민의 언어이며 방언이다.

방언은 인간의 언어

방언은 서울 또는 중심 지역이 아닌 ‘변두리 지역의 언어’라는 어감이 강하여 이 용어를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방언 대신에 ‘탯말’이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방언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기 어버이에게서 들으며 배운 언어이므로 지극히 인간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표준어는 국가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언어이기 때문에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언어이다. 이 비인간적인 언어가 지극히 인간적인 언어를 몰아낸다면 한국어 속에서 한국인의 맛과 냄새 곧 우리의 개성 있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한국인의 삶은 한국인이 사용하는 방언 속에 녹아 있고, 한국 문화의 다양성은 방언의 다양성 속에 존재한다. 방언을 빼고 어떻게 지역 문화를 논하며 지역 문화를 빼고 어떻게 한국 문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한국 문화의 폭과 깊이를 키우기 위해서 마땅히 방언에 대한 복권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즉, 방언을 새롭게 인식하고 방언과 표준어의 공존과 상호 발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국어원장인 이상규 박사의 다음과 같은 절규는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있다.

“중심에 자리한 표준어와 문화어 그리고 변방에 자리한 죽어가는 방언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죽어가는 강물, 멸종으로 치닫는 어류와 조류, 사라져 가는 나무와 들풀처럼 변두리의 방언도 함께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할 것인가. 소수 언어인 방언의 미학을 살려 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방언의 미학, 살림, 2007)

지역민의 ‘스스로 떳떳한 삶’이 방언을 살린다!

대개 학자들이나 정책 당국자들은 방언을 살리자고 하면 방언 조사를 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언을 조사하고 보존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그런 방법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그들을 위한 방법’, ‘유한계층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방언을 요즘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주민의 민속 공연처럼 국외자의 눈요깃감으로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제안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언은 표준어 사용자의 눈요깃감이나 연구 대상물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고 그들의 세계이며 그들의 가치 지향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살리려 한다면 먼저 방언 사용자들의 언어생활이 스스로 떳떳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언은 하위 언어요, 표준어는 상위 언어라거나, 방언은 무식한 시골뜨기의 언어요, 표준어는 유식한 도시민의 언어라는 식의 언어 인식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방언을 사용하면서 사는 삶이 자연스럽고 떳떳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방언은 문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이 없이 죽어 가는 방언을 되살리겠다고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은 고고학이나 박물학을 하는 학자들에게나 가치가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각 지역민이 방언을 자연스럽게 활용하여 삶과 문화를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 외부적인 인식이나 평가 때문에 방언을 기피하는 자기 검열 의식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각 지역이 자기 언어로 교육을 하고, 문학을 하고, 공연을 하고, 방송을 하고, 방언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그리고 방언과 방언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 한국어의 줄기를 만들어 내고, 이 줄기를 표준어(또는 공통어)에 접목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방언도 살리고 한국어도 살리고, 지역 문화도 살리고 한국 문화도 살리는 성과를 거두어 문화의 세기에 문화로 성공하는 민족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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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남영신
· (사)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
·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장
· 저서: <남영신의 한국어 용법 핸드북><4주간의 국어 여행>
          <국어 한무릎공부><문장 비평>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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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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