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의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혼자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말씀은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이 아닌가 싶다.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종심(從心)이라는 말은 이미 나이를 가리키는 일상의 어휘가 되었고, 동시에 그 나이에 마땅히 인간이 도달해야 할 정신적 깊이 내지는 덕(德)의 기준으로 되어 있다. 나 역시 사십 무렵엔 내가 허튼 것에 미혹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졌고, 오십이 지나서는 내가 과연 천명을 알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스스로 헤아려 보기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공자가 그 나이에 이르렀던 경지는 내게는 너무도 까마득하게 멀기만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순은커녕 걸핏하면 화를 내서 애들로부터 아버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공자의 말씀에 가까이 가려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이 육십이면 … 이순에 대해서는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도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생각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진다”고 한 주자(朱子)의 주(注)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이제 어떤 말을 들어도 허허 웃으며 받아넘길 수 있게 쯤 되었고, 또한 남에게 모난 말,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나이 육십이 되니까 스스로 여유롭고 원숙해져서인지 나도 모르게 관용과 화해의 마음이 생기더라는 고백으로 들리는 것이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을 찾아온 도올 김용옥에게 이순이 되었냐고 묻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올해로 건국 60주년이 된다고 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두고 이런저런 행사가 자못 부산스럽다. 그러나 건국 60주년을 맞는 이 나라는 여유롭고 원숙해져 있기는커녕 국정은 마냥 서툴고, 국론은 분열되었으며 사회는 촛불시위로 더없이 혼란스럽다. 자칫 비운의 60주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어쨌거나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 출발한 건국이며, 어떻게 걸어온 60년인가. 김진현 집행위원장의 “대한민국 60년은 5천년 한반도 역사의 기록, 18세기 이후 현대 세계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가장 성공한 근대화 혁명”이라는 발제는 너무 거창해서 듣기에 거북하지만, 건국 60주년이 전체적으로 자랑스러운 성취의 역사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하에서 치러지는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라서 그런지,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산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의 구성 면면이 그러하고, 기념하는 논리와 그 방향이 또한 그러하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민족, 민주, 통일의 편에 서 있는 사람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과의 반복되는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분단과 독재 아래서, 조국의 현실을 끌어안고 한번쯤 울어본 사람과, 한 점 고뇌도 없이 잘 먹고 잘 살아온 두 부류의 사람들이 엮어온 역사다. 그런데 어쩐지 건국 60주년 행사는 후자만의 잔치로 되고 있는 느낌이다.
반성과 화합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이룩한 위에 맞이하는 건국 60주년 이라면 산업화세력은 물론 민주화세력을 포함한 온 국민의 축제로 승화시켜야 마땅한 일이다. 뜻을 합하여 손에 손잡고 세계로, 미래로 나가는 건국 60주년이 되어야 한다. 단정(單政)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오늘의 성취가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단정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이루었노라고 말해야 옳다. 비록 현실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결코 정도(正道)였다고는 할 수 없는 단정의 길에 대해서도 지금은 겸허한 회오(悔悟)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국 이후 우리 안에서 서로 미워하고 대립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고 관용하는 통합의 건국 60주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편 가르기 60주년, 건국 당시의 그 혼란과 분열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60주년이 되고 있다. 건국할 때의 그 미움과 분열을 훌훌 털어버리고, 화해와 통합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건국 60주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이제 이 나라도 나이값을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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