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재 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얼마 전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전쟁과 평화’(톨스토이의 장편소설)는 못 읽겠다.” 미국 미시간대 의대 교수이자 블로거(blogger)인 브루스 프리드먼(Friedman)은 최근 이런 고충을 주변에 털어놨다. 그는 “인터넷에서 수많은 단문(短文) 자료들을 훑다보니, 생각하는 것도 ‘스타카토(staccato)' 형이 됐다”며 “블로그에서도 3~4단락이 넘는 글은 이제 부담스러워 건너뛰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오늘날 지식인들조차 인터넷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조선일보 6월 19일자)
인터넷 업체, 머물러 사색에 잠기는 것 싫어해 “인터넷에 길들여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터넷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듯 인간은 이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여러 기능 중에서도,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주는 검색기능에의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인간은 이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책을 뒤질 필요도 없고, 얻은 정보를 분석하기 위하여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어졌다.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고 그 정보의 분석 결과까지 들어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구글(google)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세계의 모든 정보를 우리의 뇌 혹은 그보다 더 영리한 인공두뇌에 직접 연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앞에서 인용한 일간지의 같은 기사에는 미국의 기술문명 비평가인 니컬러스 카의 인터넷 비판 글을 함께 소개되어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카는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라는 글에서, 구글을 포함한 “인터넷 업체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한가롭게 한곳에 머물러 천천히 읽어내려 가거나, 골똘히 사색에 잠기는 것”이라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터넷 망을 옮겨 다니는 속도가 빠를수록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인터넷에 중독된 인간의 두뇌는 “골똘히 사색에 잠기는” 기능을 상실해간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이제는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뀌어야 할 판이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아니 변화가 아니고 혁명이다.
인간의 문화와 제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이 산업혁명일 터인데 이른바 ‘IT 혁명’은 산업혁명보다 몇 십 배나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은 인간의 사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금까지의 인류와는 다른 ‘신종(新種) 인류’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니컬러스 카는 이런 신인류(新人類)를 ‘팬케이크 인간’이라 부르고 있다. 즉 넓고 풍부한 사유의 공간이 사라진 ‘얇고 납작한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유 공간 축소된 ‘얇고 납작한 인간’ 될까 걱정 인터넷의 순기능을 굳이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학생들만이라도 인터넷 공간에 떠있는 수많은 파편적인 정보의 바다에 빠뜨리지 말았으면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과제물을 제출하는 일에 일찍부터 길들여지면 그야말로 ‘얇고 납작한 인간’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 자녀들의 인간적인 부피에서 사유의 공간이 축소되어 얇고 납작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인터넷에 길들여지면 인간의 성격도 경박하고 조급한 방향으로 흘러, 참고 인내하는 인간의 미덕도 사라질 것이다.
이탈리아의 언어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은 신(神)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라 말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무엇이든 빠르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신적인 존재이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라고 말한 에코의 말을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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