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난간에 봄 / 김경후

문근영 2018. 3. 17. 10:03

난간에 봄

 

  김경후

 

 

 

북동쪽으로 폭우가 몰려오고 있다

북동쪽엔 붉고 텅 빈 집이 있다

북동쪽으로 무너져 가는

 

녹슨 난간

너덜대는 풍향계와 흙벽

암흑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자갈바람 긁고 간 자국

검은 벼락의 냄새

그리고 그게 뭐든

무너진 게 어떻게 또 무너져 가는지

사라진 게 어떻게 또 사라지는지

 

그리고 그게 뭐든

간신히 북동쪽으로 덜컹거리는 것들

북동쪽엔 무너지는 쪽으로 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

폭우가 몰려오고 있다

 

(이때쯤 땅거미가 진다면

노을은

비단으로 만든 북이 찢기듯 핏빛이겠지만)

 

무너진

붉고 텅 빈 북동쪽 집 위로

폭우가 몰려오고 있다

이런 봄 목련은 검게 필 수 있을 거 같다

 

 

 

                      —《무크 파란》00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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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후 /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열두 겹의 자정』.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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