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천장을 쳐다본다 / 고형렬
천장을 쳐다본다
고형렬
위에 누군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바닥을 쓸어가는
청소기 소리가 들린다
때론 거슬린 소리였다 슬픔의 소리로 변한다
진공청소기 머리가 모서리에 부딪친다
그 소음은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다스린다
긴 울음처럼, 줄처럼
밑에 어딘가 기이한 흡입판이 붙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형식과 같아서
반성할 수가 없다 자신이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벽에서 충전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먼지를 빨아들인다는 것에 대해
수없이 생겨나는 먼지와 함께 살아가지만
우리가 사람이므로 그것을 그곳에 방치할 수가 없다
천장을 쳐다본다, 중얼거린다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집 천장은 그들의 바닥이다
천장은 바닥을 모시고 살았던 것
이 말이 꼭 어떤 의미가 되기를 바라지 않지만
오늘 아침은 그 말의 그늘만한 절망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무렵 천장이 조용해졌다
그가 나처럼 서 있는 것 같았다 난간에? 나뭇가지에?
그들은 잊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그렇게 서 있곤 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존재의 표시 같은 진공청소기의 소음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통하진 않았지만 우린 서로 듣고 있다
—《현대시》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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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 / 1954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대청봉 수박밭』『해청』『시진리 대설』『성에꽃 눈부처』『김포 운호가든 집에서』『밤 미시령』『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유리체를 통과하다』『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장시『리틀 보이』『붕(鵬)새』, 동시집『빵 들고 자는 언니』등. 장시『리틀 보이』『붕(鵬)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