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양초 / 함태숙

문근영 2018. 3. 17. 09:48

양초

 

  함태숙

 

 

 

진심이냐고 그가 내게 물었다

두 개의 두개골을 손에 들고서

 

하나는 내 것이므로

나는 응한다, 기꺼이

입증의 의무는 내게 있으므로

이제부터 내게 자행되는 폭력은

나의 요청에 의한 것

 

손을 움직이면 손가락이 부러진다

발을 움직이면 길이 끊긴다

그러므로 빛이란

하나가 토막 나 산재한 신체

타닥타닥, 밤하늘에 유황 냄새 난다

 

저 빛에 빚이 있어

몸 속에

쇠꼬챙이 같은 한 문장을 품고 왔더랬다

 

최후 진술처럼

혀가 타드는 시간

공기는 폭력으로 전환하고

일상은 속속들이 상처로 귀환한다

 

어둠은 텅 빈 두개골로 한 번

내게 일격을 가하여

 

찰나처럼, 나의 죄는 환하다

 

진술을 마치기 전까지는

다만 꼿꼿할 따름이다

 

 

                       —《시사사》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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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숙 / 1969년 강릉 출생. 중앙대 심리학과, 같은 대학원 임상심리학 전공. 2002년《현대시》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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