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비밀의 속도 / 안차애
문근영
2018. 3. 17. 09:45
비밀의 속도
안차애
내 비밀의 비밀인 당신만 아직 모르고 있죠
비밀 더하기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에요
사랑 더하기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듯이
비밀을 비밀이게 하는 공기의 무늬와 결
힘줄의 뻗침이나 기다림의 심호흡만 가만히 수런거릴 뿐,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난쟁이 오스카가 군악대의 연주 사이로 양철북 소리를 밀어 넣듯
고요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밀어 넣어 고요의 중심이 될 뿐
비밀은 아니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숨긴 것이 없는데 비밀이 늘어난 것은 비밀의 속도 때문일까요?
가로지르는 속도 때문에 좌표 값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당신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죠
비밀은 아니에요
퍼즐의 테두리처럼,
좀처럼 당신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비밀의 비밀이예요
고양이는 고양이로 있어요,
숫양은 숫양으로 있구요,
나는 꼬리 아홉 개쯤 떼버린 여자로 있어요.
그림자는 프로필이 없는 분자식으로 떠돌구요
11월의 안개 속 고요가 수런거리는 강가에
도착할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모든 일이
당신을 가로질러 갈 거예요
내 비밀의 비밀인 당신만
모른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죠.
《시사사》 2016년 1-2월호
안차애 / 1960년 부산 출생. 2002년〈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불꽃나무 한 그루』『치명적 그늘』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