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만두와 저녁 / 김영식
문근영
2018. 3. 17. 09:43
만두와 저녁
김영식
얇게 편 만두예요 발묵하는 어둠은
달빛은 달빛을 반죽하는 골목은 골목의 아궁이에 안쳐진 창문들은
맛있게 버무려진 속이에요 이 둥근 허기는
따뜻하고 차가워요 모호하지만 쫄깃해요 우울한
몽환이에요 누군가 밤의 천장에 쾅쾅 얼음 못을 박고 가면
만두의 흰 손이 당신의 얼굴을 만져요 당신의 흰 손이 만두의 가슴을
파고들어요 우리는 만두의 나날들을 사랑했지만
누군들 목이 컥컥 메는 울음의 속 하나 가지지 않고서야
저녁의 입구에 도착하겠어요
아무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아 우리가 우리를 위로하는 시간
당신은 당신을 너무 소모했어요 아니면 너무 방임했거나
저녁의 솥단지는 고양이를 안치고 구름을 안치고 바람을 안치고 이젠 아무도
아침을 추종하진 않아요 내일은 더 얇아진 더 쓸쓸한 피(皮)를
위해 기도해요 어서 천천히 드세요 당신을 아니 죽은 내일을
가로등 가로 주린 짐승처럼 둘러앉은, 이 가없는
시간의 이빨자국 선명한,
—《포엠포엠》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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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 1960년 경북 포항 출생. 2007년 강원일보,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7년 《현대시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숟가락 사원』. 산문집『부록에 관한 세 가지 옴니버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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