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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 김경주
문근영
2018. 3. 17. 09:42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 김경주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침을 흘리며
구름으로 흘러가고
햇볕은 살이 부서져
바람에 기대어 떠다니고
꽃은 하늘이
자신을 버리게 내버려 두었다
슬픔이 내 몸에서 하는 일은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
자신을 지나가기 위해
슬픔은 내 몸을 잠시 빌려 산다
어린 물고기 몇 내 몸을 지나가고
구름과 하늘과 꽃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슬펐던 이유다
슬픔은 내 몸속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
—《현대시》2016년 3월호
김경주 / 1976년 광주 출생. 2003년〈대한매일〉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시차의 눈을 달랜다』『고래와 수증기』.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전영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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