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미래의 식탁 / 임지은

문근영 2018. 3. 17. 09:41

미래의 식탁

 

   임지은

 

 

 

다 식은 찌개를 데우고 있다

커튼이 그늘을 데려와 내 곁에 앉는다

 

혼자 하는 식사는 너무 고요하다

귀가 붙어 있는지 만져보아야 한다

찌개에 수저를 담그고

뭉크러진 양파의 호흡을 건진다

 

탁자 위에 개어 놓은 수건들은 침착하다

닦지 않은 그릇들이 개수대에 모여 있다

고개를 숙이면 무거운 생각들이 

발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저녁

 

누구의 생일도 어떤 기념일도 아니지만

오븐에서 밀가루가 부풀고

손바닥 모양의 시계가 구워진다면

 

옥수수 같은 얼굴을 가진 아이와 식탁에 앉아

알갱이처럼 대화를 굴려보겠지

이제 막 여행에서 돌아온

가방의 안부를 식탁 위에 펼친다

 

안은 곧 밖이 될 거야

도착은 이미 흘러나왔다

나는 너의 미래가 될 거야

 

우리는 기울어진 위로에 걸터앉아

쓱쓱 맛있게 시간을 비벼먹는다

아이가 컵에 고인 세계를 엎지른다

나는 떠나기 좋게 식탁을 깨끗이 치운다

 

차가운 저녁을 가득 담은 채

빈 방은 커다란 배낭이 되고 있다  

 

 

                        —《현대시학》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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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 1980년 대전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및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1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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