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수유리 흰 달 / 장이지

문근영 2018. 3. 17. 09:40

수유리 흰 달

 

  장이지

 

 

 

머리가 나빠 전문대에 간 건 아니라고

너는 표준어로 말한다.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다녔지만

사투리는 쓰지 않노라고.

 

아까는 분명히 청주라고 했지만…….

 

디자인을 배워 연봉 삼천의 인턴으로 일했는데

더 좋은 곳으로 옮기려고 그만두었다고

너는 무르게 웃는다.

디자인이 채택되면 엄청난 수당이 나오곤 했다고

묻지 않은 말을 잘도 늘어놓는다.

 

수유리 모텔에서 나와 잔 아이.

 

백납 앓는 눈에 밤의 화인(火印)이 남았다.

그 눈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잠시 너는 말이 없다가

다시 지껄인다.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했다가

구로에서 자취한다고 말을 바꾼다.

 

수유리 하늘에 뜬 어루러기 먹은 달.

달빛 속의 네 흰 눈썹.

그 눈썹 몇 낱에 가 흔들리는

바랜 꿈의 조각.

 

이름도 애칭도 없이

소한(小寒)이 가서 몸살을 하게 될

네 마음.

 

 

 

                        —《시와 표현》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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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연꽃의 입술』『라플란드 우체국』, 평론집『콘텐츠의 사회학』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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