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장르 중에서 ‘논(論)’과 ‘설(說)’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요즘의 의미로 해석해보면 대체로 ‘논설(論說)’이라는 글과 통하는 분야로 여기면 큰 착오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나 사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글의 종류입니다. 세상에 짧은 글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다산의 「성자설」이라는 논설문입니다.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해도 짧기만 합니다.
“성(誠)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본래의 뜻에 대하여 옛날 한나라 초기의 글자 해석에 훌륭한 사전으로 알려진 『삼창설문(三倉說文)』이라는 책에도 분명한 해석이 없다. 내 생각으로는 성이란 물(物)의 끝이자 시작이라고 여긴다. 몸을 닦는 수신(修身)에서 시작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치인(治人)에서 끝나니, 성이 아니고는 사물자체가 없는 것이니 이래서 사물의 끝과 시작(終始)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만 가지 사물을 끝마치고 만 가지 사물을 시작함은 간(艮)이라는 괘보다 성대함이 없다”라고 하였고, 또 『주역』에 “간괘에서 말이 이루어진다[成言]”라고 하였으니, 성(誠)이란 말이 완성됨이다. 그러니 말이 완성됨이란 사물의 종시라함이 바로 그런 뜻이다.”(誠字偏旁之義 三倉說文未有明解 余謂誠者物之終始 始於修身 終於治人 不誠無物 斯之謂物之終始也 易曰 終萬物始萬物者 莫盛乎艮 又曰成言乎艮 誠者成言也成言者物之終始也 斯其義也)
한문의 원문으로 보면 참으로 짤막한 글인데, 뜻이야 매우 높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언어로 보면 진정성, 즉 말의 시작과 끝이 제대로 완성됨을 성(誠)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말의 진정성이 없고서는 어떤 사물도 가치 있는 일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불성무물(不誠無物)’의 지극한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 그것만이 가장 믿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信)’이라는 글자가 나왔고, 말이 완성되는 효과가 나오려면 정말로 참된 말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진실하고 정성스러움의 뜻인 성(誠)이라는 글자로 만들어졌다는 다산의 주장입니다.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오늘의 세상, 어떻게 해야 인간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있고, 말을 믿을 수 있어 온갖 일이 제대로 완성되는 진실과 정성인 성(誠)의 세상이 올까요. 답답할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