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백야 / 남길순

문근영 2018. 1. 2. 00:16

백야

 

   남길순

 

 

 

나와 같은 몸을 쓰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칠 때가 있다

 

호텔에 누워 듣는 개 짖는 소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멀다

 

밤이 왔으나 죽지 못하는 태양

 

낮 동안

카프카의 무덤을 찾느라 묘지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카프카를 만났다

검은 묘비들이 살아 돌아오는 밤

 

클라이맥스로 짖어대다가 일순간

고요해지는 하늘을 본다

 

유대인 묘지 끄트머리쯤에

내가 찾는 카프카는 누워 있었다

그를 찾아야만 하는 간절한 이유라도 있는 듯

각혈하는 장미 한 송이 놓고

돌아설 때

 

한동안 잠잠하던 병이 도진다

 

이 불안의 시작이 어디인지

여름밤은 스핑크스처럼 창문 앞을 지키며

돌아가지 않는다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소리는

밤새 끙끙거리고

곁에 누워있던 누군가 황망히 떠나간 것처럼

몸을 웅크리며 너는

이불을 둘둘 말고 있다

 

지구의 한 귀퉁이

주소를 모르는 이곳에서

 

 

                       —《현대시학》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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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순 / 전남 순천 출생. 2012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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