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세계문화유산(719)/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항구, 요새, 역사 기념물 군

문근영 2017. 12. 29. 07:51

세계문화유산(719)/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항구, 요새, 역사 기념물 군

(Port, Fortresses and Group of Monuments, Cartagena; 1984)

 

 

 

Cartagena Fortresses

 

The Castle of San Felipe de Barajas

 

Walls and cannons of the old city

 

 

 

 

 

 

 

Colonial streets in Cartagena

 

Church of Saint Peter Claver

 

Colonial architecture in the old town

 

Simón Bolívar's equestrian sculpture in the eponymous park

 

 

 

 

 

 

 

 

 

 

 

 

 

 

 

 

 

 

 

 

 

 

 

   남아메리카의 가장 광대한 요새 지대인 카르타헤나는 볼리바르 주[Bolivar Department]의 카리브 해 연안에 있다. 콜롬비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 도시이며, 3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성당과 안달루시아 양식[Andalusian-style]의 궁전이 많이 있는 산페드로(San Pedro), 상인과 중산층이 거주하는 산디에고(San Diego), 그리고 일반 평민들이 사는 게세마니(Gethsemani)로 구분된다.

  카르타헤나는 아바나(Habana) 항구와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San Juan) 항구와 더불어 서인도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카르타헤나의 건축물들은 신세계[아메리카] 개척 시대이던 16~18세기에 가장 광범위하고 완벽하게 지어진 것이며, 군사 건축 문화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카르타헤나153361일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인 페드로 데 헤레디아(Pedro de Heredia)에 의해 카리브 연안 군도, 리오마그달레나(Rio Magdalena) 항구 입구에서 서쪽으로 100떨어진 다리엔(Darien) 만에 건설되었다. 만들이 이어져 있는 데다 좁은 수로에 의해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좁다랗게 연결된 육지라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카르타헤나는 선박이 정박하기에 유리했으며, 또한 훌륭한 자연 방어막을 형성할 수 있었다. 16세기 이후 이곳은 스페인이 잉카 제국을 멸망시키고 남아메리카 각지에서 강탈한 금과 페루 은산(銀山)의 은에메랄드를 비롯한 보물들을 스페인으로 운반하기 전에 임시로 보관했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남아메리카 북부 노예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후 카르타헤나에는 카탈루냐, 안달루시아 양식의 수많은 궁전, 정원, 수녀원과 교회들이 건설되었다. 1586, 스페인 왕조의 가장 유명한 군사 기술자이자 건축가인 이탈리아 태생의 후안 바우티스타 안토넬리(Juan Bautista Antonelli)가 도시에 요새를 건축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17세기에 그의 작업이 마침내 완성되면서 카르타헤나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고, 이로써 1697년까지 계속된 폰티스(Pontis) 남작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18세기에 새로이 추가된 건축물들이 기존 요새와 조화를 이루면서 현재의 광활한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초기 요새 설계에는 도시 주변의 울타리, 보카그란데(Bocagrande) 통로 입구에 있는 요새화된 산마티아스 항구, 그리고 아미나스 바이하를 통제하는 보케론의 산펠리페 탑만 계획되어 있었다. 산루이스(San Luis), 산호세(San Jose), 그리고 보카치카(Bocachica)의 산페르난도(San Fernando), 산라파엘(San Rafael), 포카치카(Pochachica)의 산타바바라(Santa Barbara) 남서쪽 통로, 산타크루스(Santa Cruz), 산후안 데 마자니요(San Juan de Manzanillo)와 바이하(Bahia) 안쪽 지역인 산세바시 데 파스테일로(San Sebasi de Pastellilo) 등의 요새에 의해 서서히 모든 관문들이 장악되었다. 동쪽으로는 산펠리페 데 바라하스(San Felipe de Barajas) 요새가 있었는데, 이 요새는 도시에서 가장 높이 솟은 험준한 바위산 위에 있어서 지협적 접근을 막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요새는 수많은 적들의 포위 속에서도 카르타헤나를 지킬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결과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 요새를 스페인 군사공학의 걸작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식민지 구축을 위해 계획된 거대한 방어 요새 속에서 도시는 발전을 거듭했다. 옛 도시에는 좁은 길옆으로 아름다운 문과 돌출된 발코니가 있는 식민지시대의 매력적인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성의 주요 출입구인 푸에르타 델 레로히(Puerta del Reloj; 시계의 문)는 오래전에 노예시장이 열렸던 로스 코체스(los Coches) 광장에 이르는 길과 연결된다. 귀족과 유명인들이 거주했던 산 페드로 지역은 1575~1612년에 건설된 산페드로 성당과 수녀원, 산토도밍고 교회, 그리고 예전에 산디에고 수도원이었던 건물 등의 유적들이 여전히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내부 문이 있는 종교 재판소에서는 관할 법정이 마법과 이단에 관한 성스러운 재판을 담당했다. 오늘날 그곳에는 역사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정부 청사, 그리고 마르키아 데 발데오요스(Marquia de Valdehoyos)의 저택이 있다. 도시 북동쪽에는 상인들과 중산층인 장인들이 거주한 산디에고 지역이 있으며, 남서쪽으로 본토에 가까스로 붙어 있는 자그마한 섬에는 평민 거주지인 게세마니가 있다. 성곽 도시 북쪽에는 로스 코체스 광장이 있으며, 식민지 시대에 군대가 주둔하던 이 광장의 아치형 구조물 밑에는 탄약과 군사 장비를 보관했었다. 성곽 경계선 밖의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의 정상에는 포파(Popa) 수도원이 있다.

출처 : 댕견 그리고 우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메모 :